책소개
집을 지으면 수명이 10년 단축된다고? 대체 왜?
실험보고서처럼 소상하고 세태소설처럼 날카로운
현장감 100% 리얼 건축일지
첫 집은 이 책으로 짓고, 진짜 내 집은 두 번째 집으로 짓자!
은퇴한 과학자가 15평짜리 집을 지으며 겪은 일을 속속들이 기록한 건축일지 형식의 에세이. 집을 짓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취득세 납부까지 모든 절차와 비용은 물론이고, 공사 현장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과 사람들 간의 갈등, 건축주로서 느끼는 기대와 실망과 자괴감까지도 숨김없이 적었다. 생생한 대화체 문장과 다채로운 인간 군상, 긴장감 있는 사건 전개와 과정별로 맞닥뜨리는 ‘웃픈’ 현실은 한 편의 세태소설을 보는 듯하다.
읽다 보면 답답한 상황에 분통이 터지다가도 저자의 소심한 반격과 솔직함에 쿡쿡 웃음이 나고, 공사판의 생리와 사람살이를 통찰한 문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나면 집을 한 채 지은 기분이다. 흔히 집을 지으면 10년 더 늙는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다시 지으면 잘 지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한 번 짓기도 어려운 집을 두 번 세 번 짓기가 어디 쉬운가. 그러니 이 책으로 첫 번째 집 짓기를 경험하고, 두 번째로 진짜 내 집을 지으면 어떨까?
목차
머리말 _4
건축일지 1부 _8
2021년 8월 9일~2022년 8월 17일
건축일지 2부 _204
2022년 8월 18일~2022년 10월 26일
후기 _354
건축비 내역 _356
저자소개
지윤규
출판사리뷰
● 넉넉잡아 넉 달이면 끝난다던 집 짓기가 열네 달이 걸린 까닭은?
_이론과는 다른 현실의 집 짓기, 실험보고서처럼 소상하고 일기처럼 솔직하다!
집을 지으면 10년은 늙는다는 말은 그만큼 신경 쓸 것이 많고 마음고생이 크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막상 무엇이 왜 그렇게 힘든지 알기 어렵다. 다 지어진 멋진 집만 보여주는 방송 프로그램이나 인스타 감성의 화보집 같은 책은 말할 것도 없고, 전문가나 건축주가 쓴 책에도 실제로 집을 지으며 건축주가 겪는 어려움이나 현장에서의 갈등 상황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기존의 집 짓기 책들과 다르다. 이 책은 성공적인 집 짓기 방법을 알려주는 대신, 현실의 집 짓기 경험을 속속들이 공유한다. 집을 짓기로 한 순간부터 계약을 하고 공사를 하고 취득세를 납부하기까지 저자가 통과해야 했던 공식적 절차와 비공식적 과정이 모두 담겼다. 그 길은 건축주가 가야 할 바람직한 길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가게 된 길이다. 집 짓기도 인생과 같아서 성공의 방법을 안다고 누구나 그 길로 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론은 이론일 뿐, 정답도 아니고 원하지도 않았지만 가게 되는 길이 있다. 그것이 현실 아니던가. 저자가 복기해서 보여주는 현실의 집 짓기 지도에는 중간 기착지와 통행료는 물론이고 각종 지뢰 매설 지역도 표시되어 있다. 이 지도를 미리 확인하고 준비한다면 2년만 늙고도 집을 지을 수 있을지 모른다. 때론 매끈한 성공의 법칙보다 생생한 경험담이 유용한 법이다.
“공사비를 미리 주면 안 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나도 그 정도는 알아. 아는 정도가 아니라 머리에 박혀 있어. 그런데 나도 어쩔 수 없는 걸 어떡해.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건축업자에게는 돈을 미리 주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얼마든지 해 줄 수 있지만 돈을 안 주면 공사를 더 이상 할 수 없다는데 어떻게 하냐고.” _52쪽
● 공사판에서 벌어지는 갈등에는 생존경쟁의 적나라한 모습이 드러난다
_집을 지으면서 겪은 사람 사는 이야기, 드라마처럼 재미있고 세태소설처럼 날카롭다!
문화 충돌은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 사이에만 있는 게 아니다. 30년을 물리학과 교수로 살다가 정년퇴임한 건축주는 공사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이나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행태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한 공사를 끝내고 다음 공사를 시작하면 좋으련만 왜 무리하게 일을 받아 놓고 생색내기 공사를 하면서 욕을 먹을까. 내가 준 돈은 어디다 쓰고 작업자들 인건비마저 주지 않고 있다니! 작업비를 못 받았다고 힘들게 쌓은 축대를 허물어 돌을 다시 실어 가겠다는 건 또 무슨 경우인가?
저자는 이처럼 어이없는 상황에 화를 내다가도 한편으로는 어떻게든 그들의 입장을 이해해 보고자 노력한다. 집을 짓다 보면 건축업자, 설계사, 공무원, 목수, 단순 작업자, 포클레인 기사, 전기 기사 등 참으로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저자는 그들을 일만 하고 가면 그만인 이름 없는 작업자로 대하지 않는다. 한 명 한 명 인사를 나누고 대화하며 저마다의 삶과 입장을 헤아려 보는 것이다. 물론 그 끝은, 이해가 아니라 실망이나 더 큰 분노일 때도 있고 자괴감일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통해 저자는 인간이라는 존재와 이 시대의 사람살이를 통찰하고 성찰한다. 독자로서 그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무척이나 아슬아슬하고 흥미롭다.
“공사 일은 날씨가 좋은 봄이나 가을에 몰리게 마련이고, 비라도 오면 일을 쉬어야 한다. 따라서 일을 할 수 있을 때 가능하면 많은 일을 해야 한다. 그러니 해 달라는 일을 마다할 수 없다. … 그러고는 욕을 먹더라도 여러 현장을 오가면서 찔끔찔끔 일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공사판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다.” _101쪽
김희철에게 받지 못한 작업비로 축대 쌓은 돌을 실어 간다는 것이 말이나 될까? 하지만 이 바닥에 말이 되는 일이 얼마나 될까? 이것은 나보고 대신 그 돈을 내라는 협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일한 값을 받아 내겠다는 윤성호를 나무랄 생각도 없었다. _191쪽
사람이 누구를 의심하기 시작하면 별 생각을 다 하게 된다. 상상력은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인간의 특성 중 하나일 것이다. 풍부한 상상력 덕분에 인간은 우주의 시작과 끝을 논하고 원자보다 작은 세상을 파헤칠 수 있게 되었지만 때로는 그 상상력으로 터무니없는 오해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_97쪽
그나저나 성중이 일을 안 하면 목수들은 누가 데려오고 데려가나…. 나는 성중의 아들이 휴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우리 공사 걱정을 하고 있었다. _173쪽
● 누군가 곁에 있다면 파란만장한 공사 현장도 견뎌낼 수 있다
저자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책을 읽다 보면 이 책이 건축 일지를 가장한 노년의 러브스토리는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책에는 아내라는 낱말이 50번도 넘게 나온다. 아내와, 아내는, 아내가, 아내도, 아내에게…. 그렇게 함께 겪고 함께 나누었기에 분통 터지고 파란만장한 집 짓기의 터널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속상하고 민망해서 화를 내다가도 미안해하고, 애를 태우는 모습이 안쓰러워 위로하고, 또 그런 마음 씀씀이에 고마워하는 부부의 모습은 세월과 더불어 단단해진 아름다운 관계를 보여준다. 둘이 함께 오일스테인을 칠하며 마주 보고 웃는 대목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머릿속에 그려져 덩달아 미소 짓게 만든다. 부부든 친구든 힘든 상황에서도 짐을 노나 지고 마주 보며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인생은 살아볼 만하지 않나 싶어지는 것이다.
하루 종일 마음 상해하는 나를 본 아내가 이번 공사로 우리 농장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을 생각하면 그 정도의 손해는 감수할 수 있다고, 마음 편하게 생각하자고 했다. 종일 속을 끓이는 내가 안돼 보였던 모양이다. 사람을 너무 잘 믿어서 큰 손해를 보게 되었다고 원망을 하지 않는 것만도 다행인데 위로까지 해 주니 고맙다. _85쪽
오일스테인을 칠하고 있는 동안 비구름이 다가오고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날씨가 쌀쌀해졌다. 금년 들어 가장 춥다는 오늘 전방 고지에는 눈까지 왔다고 한다. 바람이 훅 불어와 추위를 느끼는 순간 아내와 나는 서로를 쳐다보면서 웃었다.
“그 생각 했구나. 오래전에 청주 목수가 했던, 추워지기 전에 공사를 끝내야 한다고 했던 말.”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또 웃었다. _33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