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삼국사기』는 정치적 흥망 변천을 기년체로 서술한 삼국의 정사이다. 본기는 신라, 고구려, 백제를 개별적으로 건국으로부터 멸망에 이르기까지 연대순으로 서술하고 , 연대는 삼국의 왕대와 중국의 왕대를 대조하였다. 본기 28권?연표 3권, 지(志) 9권, 열전 10권 도합 50권으로 되어있다.
본기는 신라본기 12권, 고구려본기 10권, 백제본기 6권의 순으로 구분된다. 연표는 중국·신라·고구려·백제 순으로 엮었으며, 지(志)는 제1 제사·악(樂), 제2 색복(色服)·거기(車騎)·기용(器用)·옥사(屋舍), 그리고 제3~6 지리, 제7~9 직관(職官)으로 되어 있다. 열전은 삼국시대에 활약한 주요 인물들의 전기이 다. 처음 3권은 김유신의 전기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7권에 충효·용사·문인·반역인 등 50인의 전기를 수록하였는데, 고구려인 8명, 백제인 2명, 신라인 40명으로 배분되어 있다.
『삼국사기』는 저자 일연의 왕조시대 이데올로기에 의하여 서술되기는 하였으나 사회, 역사, 경제, 천문, 지리, 풍속, 예악, 전기 등 각 방면에 걸쳐 체계적으로 서술되어 있기 때문에 삼국시대를 연구함에 있어서 중요한 자료가 된다.
목차
《삼국사기》를 읽는 이들에게
삼국사기를 올리는 글
삼국사기 권 제1―신라본기(新羅本紀) 제1 / 29
시조(始祖) 혁거세거서간(赫居世居西干) / 29 남해차차웅(南解次次雄) / 32
유리이사금(儒理尼師金) / 34 탈해이사금(脫解尼師今) / 36
파사이사금(婆娑尼師金) / 38 지마이사금(祗摩尼師今) / 41
일성이사금(逸聖尼師今) / 42
삼국사기 권 제2―신라본기(新羅本紀) 제2 / 53
아달라이사금(阿達羅尼師今) / 53 벌휴이사금(伐休尼師今) / 54
내해이사금(奈解尼師今) / 56 조분이사금(助賁尼師今) / 58
첨해이사금(沾解尼師今) / 59 미추이사금(味鄒尼師今) / 61
유례이사금(儒禮尼師今) / 62 기림이사금(基臨尼師今) / 63
흘해이사금(訖解尼師今) / 64
삼국사기 권 제3―신라본기(新羅本紀) 제3 / 73
내물이사금(奈勿尼師今) / 73 실성이사금(實聖尼師今) / 75
눌지마립간(訥祗麻立干) / 77 자비마립간(慈悲麻立干) / 79
소지마립간(炤知麻立干) / 81
삼국사기 권 제4―신라본기(新羅本紀) 제4 / 90
지증마립간(智證麻立干) / 90 법흥왕(法興王) / 92 진흥왕(眞興王) / 94
진지왕(眞智王) / 98 진평왕(眞平王) / 99
삼국사기 권 제5―신라본기(新羅本紀) 제5 / 113
선덕왕(善德王) / 113 진덕왕(眞德王) / 118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 122
삼국사기 권 제6―신라본기(新羅本紀) 제6 / 138
문무왕(文武王) 상 / 138
삼국사기 권 제7―신라본기(新羅本紀) 제7 / 157
문무왕(文武王) 하 / 157
삼국사기 권 제8―신라본기(新羅本紀) 제8 / 184
신문왕(神文王) / 184 효소왕(孝昭王) / 188 성덕왕(聖德王) / 190
삼국사기 권 제9―신라본기(新羅本紀) 제9 / 207
효성왕(孝成王) / 207 경덕왕(景德王) / 209
혜공왕(惠恭王) / 214 선덕왕(宣德王) / 217
삼국사기 권 제10―신라본기(新羅本紀) 제10 / 224
원성왕(元聖王) / 224 소성왕(昭聖王) / 228
애장왕(哀莊王) / 229 헌덕왕(憲德王) / 232
흥덕왕(興德王) / 237 희강왕(僖康王) / 239
민애왕(閔哀王) / 240 신무왕(神武王) / 241
삼국사기 권 제11―신라본기(新羅本紀) 제11 / 251
문성왕(文聖王) / 251 헌안왕(憲安王) / 254
경문왕(景文王) / 255 헌강왕(憲康王) / 258
정강왕(定康王) / 260 진성왕(眞聖王) / 261
삼국사기 권 제12―신라본기(新羅本紀) 제12 / 270
효공왕(孝恭王) / 270 신덕왕(神德王) / 272 경명왕(景明王) / 272
경애왕(景哀王) / 275 경순왕(敬順王) / 276
삼국사기 권 제13―고구려본기(高句麗本紀) 제1 / 286
시조(始祖) 동명성왕(東明聖王) / 286 유리왕(琉璃王) / 290
삼국사기 권 제14―고구려본기(高句麗本紀) 제2 / 301
대무신왕(大武神王) / 301 민중왕(閔中王) / 307
모본왕(慕本王) / 308
삼국사기 권 제15―고구려본기(高句麗本紀) 제3 / 313
대조대왕(大祖大王) / 313 차대왕(次大王) / 319
삼국사기 권 제16―고구려본기(高句麗本紀) 제4 / 325
신대왕(新大王) / 325 고국천왕(故國川王) / 327 산상왕(山上王) / 330
삼국사기 권 제17―고구려본기(高句麗本紀) 제5 / 339
동천왕(東川王) / 339 중천왕(中川王) / 342 서천왕(西川王) / 344
봉상왕(烽上王) / 345 미천왕(美川王) / 347
삼국사기 권 제18―고구려본기(高句麗本紀) 제6 / 356
고국원왕(故國原王) / 356 소수림왕(小獸林王) / 358
고국양왕(故國壤王) / 359
광개토왕(廣開土王)360 장수왕(長壽王) / 362
삼국사기 권 제19―고구려본기(高句麗本紀) 제7 / 373
문자왕(文咨王) / 373 안장왕(安臧王) / 376 안원왕(安原王) / 377
양원왕(陽原王) / 378 평원왕(平原王) / 379
삼국사기 권 제20―고구려본기(高句麗本紀) 제8 / 387
영양왕(dud8-13陽王) / 387 영류왕(榮留王) / 397
삼국사기 권 제21―고구려본기(高句麗本紀) 제9 / 406
보장왕(寶臧王) 상 / 406
삼국사기 권 제22―고구려본기(高句麗本紀) 제10 / 425
보장왕(寶臧王) 하 / 425
삼국사기 권 제23―백제본기(百濟本紀) 제1 / 442
시조(始祖) 온조왕(溫祚王) / 442 다루왕(多婁王) / 448 기루왕(己婁王) / 449
개루왕(蓋婁王) / 450 초고왕(肖古王) / 451
삼국사기 권 제24―백제본기(百濟本紀) 제2 / 460
구수왕(仇首王) / 460 고이왕(古dl3-13王) / 461 책계왕(責稽王) / 464
분서왕(汾西王) / 464 비류왕(比流王) / 465 계왕(契王) / 466
근초고왕(近肖古王) / 466 근구수왕(近仇首王) / 467 침류왕(枕流王) / 468
삼국사기 권 제25―백제본기(百濟本紀) 제3 / 474
진사왕(辰斯王) / 474 아신왕(阿莘王) / 475
전지왕(wjs8-13支王) / 477 구이신왕(久dl3-13辛王) / 478
비유왕(毗有王) / 478 개로왕(蓋鹵王) / 479
삼국사기 권 제26―백제본기(百濟本紀) 제4 / 491
문주왕(文周王) / 491 삼근왕(三斤王) / 492
동성왕(東城王) / 493 무녕왕(武寧王) / 496
성왕(聖王) / 497
삼국사기 권 제27―백제본기(百濟本紀) 제5 / 504
위덕왕(威德王) / 504 혜왕(惠王) / 506
법왕(法王) / 506 무왕(武王) / 506
삼국사기 권 제28―백제본기(百濟本紀) 제6 / 515
의자왕(義慈王) / 515
삼국사기 권 제29―연표(年表) 상 / 531
삼국사기 권 제30―연표(年表) 중 / 547
삼국사기 권 제31―연표(年表) 하 / 563
삼국사기 권 제32―잡지(雜志) 제1 / 578
제사(祭祀) / 578 악(樂) / 582
삼국사기 권 제33―잡지(雜志) 제2 / 594
복색(服色) / 594 거기(車騎) / 599
기용(器用) / 601 옥사(屋舍) / 601
삼국사기 권 제34―잡지(雜志) 제3 / 607
지리(地理) 1 / 607
삼국사기 권 제35―잡지(雜志) 제4 / 622
지리(地理) 2 / 622
삼국사기 권 제36―잡지(雜志) 제5 / 637
지리(地理) 3 / 637
삼국사기 권 제37―잡지(雜志) 제6 / 650
지리(地理) 4―고구려(高句麗) / 650 백제(百濟) / 658
삼국사기 권 제38―잡지(雜志) 제7 / 677
직관(職官) 상 / 677
삼국사기 권 제39―잡지(雜志) 제8 / 694
직관(職官) 중 / 694
삼국사기 권 제40―잡지(雜志) 제9 / 705
직관(職官) 하―무관(武官) / 705 외관(外官) / 715
삼국사기 권 제41―열전(列傳) 제1 / 728
김유신(金庾信) 상 / 728
삼국사기 권 제42―열전(列傳) 제2 / 741
김유신(金庾信) 중 / 741
삼국사기 권 제43―열전(列傳) 제3 / 753
김유신(金庾信) 하 / 753
삼국사기 권 제44―열전(列傳) 제4 / 763
을지문덕(乙支文德) / 763 거칠부(居柒夫) / 765 거도(居道) / 766
이사부(異斯夫) / 767 김인문(金仁問) / 767 김양(金陽) / 770
흑치상지(黑齒常之) / 773 장보고(張保皐) / 774 사다함(斯多含) / 777
삼국사기 권 제45―열전(列傳) 제5 / 784
을파소(乙巴素) / 784 김후직(金后稷) / 785 녹진(祿眞) / 786
밀우(密友)·유유(紐由) / 788 명림답부(明臨答夫) / 790
석우로(昔于老) / 791 박제상(朴堤上) / 792
귀산(貴山) / 794 온달(溫達) / 796
삼국사기 권 제46―열전(列傳) 제6 / 804
강수(强首) / 804 최치원(崔致遠)806 설총(tjf-13聰) / 810
삼국사기 권 제47―열전(列傳) 제7 / 817
해론(奚論) / 817 소나(素那) / 818 취도(驟徒) / 819
눌최(訥催) / 821 설계두(tjf-13rP-13頭) / 822 김영윤(金令胤) / 822
관창(官昌) / 824 김흠운(金歆運) / 825
열기(裂起) / 826 비녕자(丕寧子) / 827
죽죽(竹竹) / 829 필부(匹夫) / 830 계백(rP10-13伯) / 830
삼국사기 권 제48―열전(列傳) 제8 / 837
향덕(向德) / 837 성각(聖覺) / 838 실혜(實兮) / 838
물계자(勿稽子) / 839 백결선생(百結先生) / 840 검군(劍君) / 840
김생(金生) / 841 솔거(率居) / 842 효녀(孝女) 지은(知恩) / 842
설씨녀(氏女) / 843 도미(都彌) / 845
삼국사기 권 제49―열전(列傳) 제9 / 850
창조리(倉助利) / 850 개소문(蓋蘇文) / 851
삼국사기 권 제50―열전(列傳) 제10 / 857
궁예(弓裔) / 857 견훤(甄萱) / 863
발문 / 883
저자소개
김부식 , 신호열
출판사리뷰
합리적 역사관과 삼장(三長)으로 완성한 최고 역사서
《삼국사기》 저자 김부식은 중국 것은 잘 알면서도 우리 것은 거의 돌아보지 않는 그즈음 귀족 지도층의 그릇된 생각과 태도를 개탄했다. 고려 초기에는 몇몇 중국 역사서에 신라, 고구려, 백제의 열전이 실려 있었지만 그 분량은 매우 적었다. 남아있는 옛 기록들도 글이 거칠고 서투르며 빠진 내용이 많았다.
당시 역사가로서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장점인 삼장(三長), 즉 才智, 학문, 식견을 모두 갖춘 사람은 김부식뿐이었다. 김부식은 ‘한 나라의 역사를 완성하여 이를 만세에 남겨주어 해와 별처럼 밝히고 싶다’는 인종 임금의 뜻을 받들어, 새로이 훌륭한 역사책을 편찬해 후세에 교훈으로 삼고자 《삼국사기》를 펴냈다.
김부식은 공자와 맹자의 유교를 토대로 한 선악의 도덕사관(道德史觀)에 가치 기준을 두고 있다. 김부식은 유교의 도덕관에 입각한 그 나름대로의 합리적 역사관을 확립하고 《삼국사기》를 편찬했다는 의미에서 높이 평가받는다.
국가의식 자아의식으로 이끌어가는 민족의 미래
《삼국사기》는 강렬한 국가의식과 자아의식을 내세운다. 또 역사 속에서 개인의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이것은 단순한 영웅주의 사관이 아니다. 고대에 있어서 개인의 역할을 강조함은 물론, 사욕을 버리고 공익을 위하여 힘쓰라는 공적인 윤리를 제시하여, 국가와 민족에 희생하는 인간의 도리를 중시하고 있다.
고려후기의 여러 사서나 조선시대의 많은 사서들이 모두 《삼국사기》와 거의 같은 역사관의 입장을 취했다는 것을 보더라도 《삼국사기》가 우리나라 사서의 주류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삼국사기》는 《삼국유사》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책일 뿐 아니라, 그 체계가 잘 정비된 정사(正史)로서 삼국시대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기본적인 사료이다. 이를 통해 우리민족과 국가, 사회의 문화발전상을 알 수 있고, 그 당시의 모든 내용들을 거울삼아 좋은 점을 살리고 좋지 못한 점을 반성하여 보다 나은 미래를 창조해 낼 수 있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