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도서출판 b에서 『세계철학사』(전 8권+별권)를 펴냈다. 이 『세계철학사』는 이토 구니타케/야마우치 시로/나카지마 다카히로/노토미 노부루가 책임 편집을 맡고, 일본의 철학자 115명이 참여하고 있다. 일본의 치쿠마쇼보(筑摩書房)에서 창사 80주년 기념작으로 출간(2020년)한 것을 이신철 교수의 번역으로 도서출판 b 창사 20주년 기념작으로 펴낸 것이다.
이 『세계철학사』는 고대에서 현대까지의 ‘세계철학’을 각각의 시대를 특징짓는 주제로부터 서로 다른 전통을 각각의 시대마다 살펴나간다. 각각의 전통들 사이에는 중간지대와 상호 영향, 수용과 새로운 전통의 형성이 존재하며, 거기서 철학은 경제, 과학, 종교와 제휴한다. 이 『세계철학사』의 기획·편집자들에 따르면 ‘세계철학’이란 서양 중심으로 전개되어온 철학을 넘어 보편적이고 다원적인 철학, 인류의 생활 세계를 아우르는 철학, 다양한 문화와 전통과 언어를 기반으로 하는 철학, 자연환경과 생명과 우주로부터 인류의 존재 방식을 반성하는 철학을 창출하고자 하는 운동으로서의 ‘세계철학’을 가리킨다. 이러한 ‘세계철학’의 관점에서 철학사를 바라봄으로써 철학적 앎의 역동적 움직임을 재현하고, 현재 철학이 서 있는 자리와 과제를 확인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왜 ‘세계철학’이고 ‘세계철학사’인가? 지금까지 ‘철학(필로소피아)’이란 기본적으로 서양철학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어왔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세계는 서양 문명의 틀을 넘어서서 다양한 가치관과 전통이 교차하는 가운데 서로 다른 것들이 하나를 이루며 복잡한 양상을 드러내는 새로운 시대이다. 나아가 오늘날 기후 위기와 팬데믹, AI를 비롯하여 인간이 부딪친 많은 문제는 지구마저 넘어서고 이전에 알지 못했던 차원의 발상을 요구하고 있으며, 따라서 철학은 새로운 시야에서 새롭게 인류의 역사를 바라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 『세계철학사』는 유럽과 북아메리카만이 아니라 종래에는 고려되지 않았던 중근동, 러시아, 인도, 중국, 한국, 일본, 나아가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와 라틴아메리카와 원주민 아메리카 등까지 두루 눈을 돌리고 있다. 이렇게 인류학적으로 파악되는 다양한 지역과 같은 이른바 주변 문화까지 다루게 되는 까닭은, 그것들이 우리에게 지금까지 우리를 일방적으로 규정해온 서양철학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다른 관점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이미 역사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서로 다른 사유를 형성해 온 세계철학의 중요한 기축을 이루어왔다고 파악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들만 보더라고 이 『세계철학사』에는 명실공히 ‘세계’라고 부를 수 있는 시야를 구축하고 확보하려는 흔적이 여실하다.
목차
머리말 _11
제1장 이성과 자유 _15
1. 들어가며 ㅣ 2. 이성의 낭만주의 ㅣ 3. 진화와 도태 ㅣ 4. 제3의 길
제2장 독일의 국가 의식 _41
1.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ㅣ 2. 칸트와 프랑스 혁명 ㅣ 3. 피히테의 정치 철학
제3장 서양 비판의 철학 _71
1. 서양 철학의 전환점 ㅣ 2. 쇼펜하우어 ㅣ 3. 니체
제4장 맑스의 자본주의 비판 _97
1. 맑스와 ‘맑스주의’ ㅣ 2. 철학 비판 ㅣ 3. 경제학비판
제5장 진화론과 공리주의의 도덕론 _123
1. 인간의 유래, 도덕의 기원 ㅣ 2. 벤담의 공리주의 ㅣ 3. 밀의 공리주의 ㅣ 4. 나가며
제6장 수학과 논리학의 혁명 _149
1. 들어가며 ㅣ 2. 칸트에서 피히테로 ㅣ 3. 대수 방정식론으로부터 갈루아 이론으로 ㅣ 4. 갈루아 이론과 군론의 함수론과 기하학, 미분 방정식론으로의 확장 ㅣ 5. 나가며
제7장 ‘신세계’라는 자기의식 _181
1. 프래그머티즘이란 무엇인가? ㅣ 2. 퍼스 ㅣ 3. 제임스 ㅣ 4. 듀이 ㅣ 5. 계속해서 진화하는 프래그머티즘
제8장 스피리추얼리즘의 변천 _205
1. 스피리추얼리즘의 역사적 배경 ㅣ 2. 멘 드 비랑 ㅣ 3. 쿠쟁 ㅣ 4. 라베송 ㅣ 5. 베르그송
제9장 근대 인도의 보편 사상 _233
1. ‘근대’와 인도 그리고 ‘종교’ ㅣ 2. 정신성과 세속주의 ㅣ 3. 브라흐마 사마지의 계보─보편과 고유의 희구와 그 초점 ㅣ 4. 근대 인도에 뚫린 ‘구멍’─라마크리슈나와 신
제10장 ‘문명’과 근대 일본 _261
1. ‘문명개화’의 행방 ㅣ 2. 서양 중심주의를 넘어서는 것 ㅣ 3. 19세기의 다면성
후기 _287
칼럼 1. 칸트에서 헤겔로 _66
칼럼 2. 셸링 적극 철학의 새로움 _120
칼럼 3. 스펜서와 사회 진화론 _146
칼럼 4. 19세기 러시아와 동고의 감성 _176
편자ㆍ집필자ㆍ옮긴이 소개 _291
연표 _297
찾아보기 _304
저자소개
이토 구니타케, 야마우치 시로, 나카지마 다카히로, 노토미 노부루 , 이신철
출판사리뷰
각 권이 모두 10개의 장과 3~5개의 칼럼으로 이루어진 전 8권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제1권: 고대Ⅰ. 지혜에서 앎의 사랑으로, 제2권: 고대Ⅱ. 세계철학의 성립과 전개, 제3권: 중세Ⅰ. 초월과 보편을 향하여, 제4권: 중세Ⅱ. 개인의 각성, 제5권: 중세Ⅲ. 바로크의 철학, 제6권: 근대Ⅰ. 계몽과 인간 감정론, 제7권: 근대Ⅱ. 자유와 역사적 발전, 제8권: 현대. 지구화 시대의 앎. 거기에 추가된, ‘미래를 열다’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별권은 책임 편집자들의 대담을 포함하여 네 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제1부: 세계철학의 과거ㆍ현재ㆍ미래, 그리고 13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제2부: 세계철학사의 더 나아간 논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 이 『세계철학사』의 특징
1. 세계라는 시야에서 철학을 묻고, 철학으로 다시 세계를 묻는 서양철학사가 아닌 세계철학사.
2. 철학이 없다는 동양에서 ‘세계철학’의 관점을 제시한 철학사.
3. 오래전에 씌어진 철학사가 아닌 21세기 최신 철학까지 반영한 철학사.
4. 최대한 쉬운 문체와 서술 방식으로 대중성을 담보하고 있는 철학사.
5. 전 8권+별권의 분책 편집 구성으로 휴대성이 용이한 철학사.
누구나 말하듯이 현대는 지구화 시대이다. 지구화 시대란 사람과 사물이 세계의 구석구석까지 특별한 제한 없이 자유롭게 교류하거나 유통하거나 할 수 있는 시대를 말한다. 이와 같은 시대가 도래한 것은 기본적으로는 교통수단과 유통 기구, 통신 기술의 고도한 발전과 그것들의 세계적 규모에서의 전파, 침투에 따라 이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자유로운 행동이나 교류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라 이러한 과학 기술들의 확산을 솔선하여 촉진한다든지 그 침투를 강력하게 유도한다든지 하는 고도로 금융화한 현대 자본주의의 전개라는,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 경제적인 요인도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야 어쨌든 우리의 오늘날 하루하루 생활은 지구화 시대의 이러한 구조에 어쩔 수 없이 휘말려 든 형태로 영위되고 있으며, 그 점은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문화적, 예술적 활동이나 학술적 교류에서도 충분히 실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지구화가 초래하는 영향이 언제나 적극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좀 더 심각하고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측면으로서 재해나 역병의 지구적 규모에서의 대유행 등, 인간의 생명 유지 가능성과도 직결된 중대한 위험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지금 대단히 엄혹한 형태로 통감하고 있는 대로이다. 우리는 확실히 지구화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그 은혜도 입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세계적 규모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오늘날의 삶의 방식의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양 측면의 의미를 우리는 점점 더 진지하게 반성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지구화 시대인 현대에 학술의 한 부문임과 동시에 모든 학술 문화 활동의 근원적인 정신적 원천이기도 한 철학은 그 자체로서 전 지구적인 것일 수 있을까? 그리고 만약 현대의 철학적 사유가 참다운 의미에서 전 지구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그 ‘세계철학’이란 어떠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일까?
-『세계철학사』, 제8권, 283-284쪽
옮긴이는 이 『세계철학사』의 ‘세계철학’, ‘세계철학사’가 그저 상투적인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철학’ 그리고 ‘역사’의 복합적인 얽힘 속에서 철학사를 전개하고자 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서 이 『세계철학사』를 우리말로 옮기고자 구상하기 시작했다. 옮긴이로서는 어쩌면 이 새로운 『세계철학사』가 코로나 팬데믹, 기후 위기, 인류세 등과 같은 바로 이 시대에 뜨겁게 논의되고 있는 현대의 다양한 문제들과 그에 대응한 사변적 실재론, 신유물론 등과 같은 새로운 철학 사조를 사유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어떤 실마리를 제공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옮긴이는 평소 ‘철학이란 무엇인가?’, ‘세계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세계 속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 등이 철학의 근본 문제를 구성한다고 생각하고, 다른 한편 철학 공부는 철학의 역사와 더불어 이루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해 왔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해온 경직되고 천편일률적인 철학자와 학설들로 채워진 기존의 ‘서양 철학사’가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과 사유의 현실성을 옥죄고 있다는 느낌을 저버릴 수 없는 상황에서 다차원적이고 다측면적인 ‘세계’의 관점에서 다양한 가치관과 서로 다른 전통을 돌아보고 이 ‘세계’ 속 인간의 삶을 다시 새롭게 사유하고자 하는 이 새로운 『세계철학사』의 시도야말로 서로 연관된 철학과 철학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보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세계철학사』, 별권, ‘옮긴이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