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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씨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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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상품명 여씨춘추
정가 ₩32,000
판매가 ₩28,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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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글항아리
ISBN 9788993905885
출간일 2012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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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역주본의 소소한 오류들을 바로잡고, 번역 문체도 현대 한국어에 맞게 자연스럽게 바꾸었다. 한문원문과 낱말 유래·풀이 등을 생략함으로써 교양 고전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게 체제를 갖췄다. 물론 『여씨춘추』 원전 전체를 완역했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국내 독서계에 고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여씨춘추』 또한 중요한 고전으로 주목받고 있다. 책에 실린 해제를 중심으로 아래에 『여씨춘추』가 어떤 책인지, 그 출간의 의미는 무엇인지 등을 짚어보았다.

목차

머리말
초판 서문
해제: 여불위와 『여씨춘추』
여씨춘추 서序

제1부 십이기十二紀

맹춘기孟春紀
봄의 시작-맹춘기孟春紀
본성과 생명에 순응함-본생本生
꼬리와 고삐 사이의 순리-중기重己
함께 나눔을 귀하게 여기다-귀공貴公
사사로움을 떠나다-거사去私

중춘기仲春紀
봄이 한창일 때-중춘기仲春紀
오로지 삶을 위해서라면-귀생貴生
정욕을 절제하는 법-정욕情欲
물감을 잘 보고 물들여야 한다-당염當染
가까운 곳을 기쁘게 하라-공명功名

계춘기季春紀
늦봄에 해야 하는 일들-계춘기季春紀
수명을 다 누리다-진수盡數
먼저 자신의 몸을 다스려라-선기先己
사람을 알아보는 방법-논인論人
동그라미와 모서리의 조화-환도道

맹하기孟夏紀
여름의 시작-맹하기孟夏紀
배움을 권면하다-권학勸學
스승을 모시는 법-존사尊師
제자를 속이는 스승-무도誣徒
여러 사람의 장점을 모아서 부족함을 메우다-용중用衆

중하기仲夏紀
여름이 한창일 때-중하기仲夏紀
도에 합당한 음악-대악大樂
음악이 현란하면 쇠망한다-치악侈樂
적절한 음악이란-적음適音
각 시대의 악무 개관-고악古樂

계하기季夏紀
늦여름이 오면-계하기季夏紀
율려律呂의 정치-음률音律
동서남북에서 음악이 처음 생길 때-음초音初
진정한 즐거움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제락制樂
어지러운 나라의 괴이한 현상들-명리明理

맹추기孟秋紀
가을의 시작-맹추기孟秋紀
군대는 필요악이다-탕병蕩兵
난세를 구하려면-진란振亂
반전론의 허구와 모순-금색禁塞
백성은 의로운 군대를 그리워한다-회총懷寵

중추기仲秋紀
가을이 한창일 때-중추기仲秋紀
위세, 필승의 전략-논위論威
싸움은 정예로 한다-간선簡選
승리를 결정짓는 것들-결승決勝
병사를 내 몸처럼 아끼다-애사愛士

계추기季秋紀
가을이 깊어지는 때-계추기季秋紀
전쟁을 하려면 민심을 얻어라-순민順民
선비의 재능을 알아보는 사람의 것-지사知士
이기고 지는 것의 원인을 파악하라-심기審己
싸우지 않고 투항케 하는 방법-정통精通

맹동기孟冬紀
겨울의 시작-맹동기孟冬紀
상례를 검소하게 하라-절상節喪
죽은 이를 위한 검소한 장례-안사安死
보배로 여기는 대상이 다르다-이보異寶
무엇이든 쓰기 나름이다-이용異用

중동기仲冬紀
겨울이 한창일 때-중동기仲冬紀
목숨을 바쳐 이룩하는 충절-지충至忠
충절의 진면목-충렴忠廉
궤변과 부조리의 고사들-당무當務
멀리 내다보는 지혜-장견長見

계동기季冬紀
늦은 겨울의 일들-계동기季冬紀
죽음으로 보답하는 선비의 절개-사절士節
한번 세운 의리는-개립介立
붉은 돌의 붉음은 빼앗을 수 없다-성렴誠廉
능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음을-불침不侵

사사로움의 해악-서의序意

제2부 팔람八覽

유시람有始覽
천지의 시작-유시有始
동류의 사물들은 서로 감응한다-응동應同
마음의 혹을 제거하다-거우去尤
남의 말을 잘 들으려면-청언聽言
듣는 일도 중요하지만-근청謹聽
근본적인 일에 힘쓰다-무본務本
큰 것을 지향해야 하는 까닭-유대諭大

효행람孝行覽
효는 천하 다스림의 근본이다-효행孝行
산해진미의 모든 것-본미本味
큰일은 때를 기다려야 한다-수시首時
상을 잘 베푼 지도자들-의상義賞
정리에 어긋나더라도 멀리 내다본다면-장공長攻
천명 안에서 사람이 해야 할 일-신인愼人
만남의 의미-우합遇合
반드시 사필귀정은 아니다-필기必己

신대람愼大覽
잘나갈 때 조심하라-신대愼大
논공행상의 요체-권훈權勳
자신을 낮추어야 현자를 얻는다-하현下賢
현자는 반드시 보은한다-보경報更
이치에 의해서-순설順說
지혜로 할 수 있는 일-불광不廣
대세를 중시하라-귀인貴因
왜 변법을 해야 하는가-찰금察今

선식람先識覽
미래를 미리 알려면-선식先識
삼왕과 오패는 왜 더 이상 없는가-관세觀世
변화의 조짐을 감각하는 지혜-지접知接
지혜가 모자라면 나중에야 뉘우친다-회과悔過
더불어 즐길 수는 있다-낙성樂成
노나라의 정변도 사소한 닭싸움에서 시작되었다-찰미察微
선입견을 버려라-거유去宥
올바른 명분의 근거-정명正名

심분람審分覽
신하들의 직분과 명분을 명확히 정해주다-심분審分
군주가 지켜 행할 일-군수君守
리더십의 요체-임수任數
친히 나서지 말라-물궁勿躬
명철한 군주가 되는 기술-지도知度
세를 거스르지 말라-신세愼勢
나라를 다스리는 법과 사상은 하나여야 한다-불이不二
군주는 하나만 잡고 있으면 된다-집일執一

심응람審應覽
군주의 대화법-심응審應
지도자는 말을 신중히 하라-중언重言
말해주지 않아도 깨닫는 지혜-정유精諭
본뜻을 저버린 말-이위離謂
고대 중국의 궤변들-음사淫辭
이치를 만나도 굽히지 않는다-불굴不屈
응수의 달인들-응언應言
먼저 조건을 갖추어라-구비具備

이속람離俗覽
속물성을 버린 사람들-이속離俗
세속이 이해할 수 없는 외로움-고의高義
덕은 의리를 세우고, 의리는 죽음을 이긴다-상덕上德
백성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용민用民
잘나가는 위세라도 적절히 부려라-적위適威
행위와 의욕-위욕爲欲
원수와 도적에게도 신의를 지킨 환공-귀신貴信
사람을 들어 쓰기가 어렵다-거난擧難

시군람恃君覽
임금을 세워야 하는 이유-시군恃君
더 큰 이로움을 위하여-장리長利
삶과 죽음의 한계를 알다-지분知分
유유상종의 이치-소류召類
막힌 것을 소통하게 하려면-달울達鬱
때와 세를 따져서 결행하다-행론行論
교만한 군주가 되지 않으려면-교자驕恣
겉모습을 살펴보면 미래가 보인다-관표觀表

제3부 육론六論

개춘론開春論
설득은 계절이 바뀌듯이-개춘開春
대청마루 위에서의 정치-찰현察賢
단간목을 기다린 위 문후-기현期賢
무엇이 소중한지를 알라-심위審爲
진정 아껴야 할 것-애류愛類
힘과 지혜는 순발력에서 나온다-귀졸貴卒

신행론愼行論
의롭지 않은 행위의 결말-신행愼行
의리 없는 자의 최후-무의無義
간신은 충신처럼 보인다-의사疑似
대의에 충실해야 상호 예측 가능하다-일행壹行
현자를 찾아야 성왕이 된다-구인求人
진나라 군대가 돼지 세 마리로 황하를 건너다-찰전察傳

귀직론貴直論
죽음을 무릅쓰고 직간한 사람들-귀직貴直
초 문왕에게 회초리를 댄 태보 신-직간直諫
훗날의 형세를 미리 알다-지화知化
도리를 벗어난 것들-과리過理
꽉 막힌 군주들-옹색壅塞
난리는 난리를 부른다-원란原亂

불구론不苟論
이치와 의로움은 구차하지 않다-불구不苟
명마를 구하기보다는 백락을 찾아라-찬능贊能
스스로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자지自知
상벌의 원칙-당상當賞
정신을 집중하면 귀신이 일러준다-박지博志
이치를 중시하고 그에 순응하라-귀당貴當

사순론似順論
존재는 겉보기와 다르다-사순似順
사물은 실질에 맞게 분별해야 한다-별류別類
절도가 있어야 하는 이유-유도有度
신하의 공적은 군주의 것으로 기억된다-분직分職
맡은 바의 자기 구석을 모나게 지키다-처방處方
신뢰는 작은 약속의 실천으로부터-신소愼小

사용론士容論
선비의 자태-사용士容
삼만 근을 들어올리는 장사가 한 근을 못 들랴-무대務大
농자, 천하지대본야-상농上農
농작물을 땅에 맡기는 법-임지任地1
농사는 흙을 아는 데서부터 시작한다-변토辯土
제때 가꾼 곡물은 이렇게 다르다-심시審時

『여씨춘추』 완역에 부쳐_정재서 이화여대 교수
부록 1 『여씨춘추』의 판본들
부록 2 『여씨춘추』의 고증 자료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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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여불위

출판사리뷰

천지天地, 만물萬物, 고금古今의 일을 모두 포괄하여
하나의 일관된 철학적 체계를 펼친 불후의 동양 고전
17년 만에 완역개정판으로 만나는 『여씨춘추』


“이 책의 내용을 한 자라도 고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천금을 주겠다.”
_ 『여씨춘추』가 완성되자 여불위가 함양咸陽의 시문市門에 걸어놓고 한 말

“이리하여 여불위는 식객들로 하여금 각기 그들의 들은 바를 저술케 하고 이를 모아 따져서 「팔람八覽」「육론六論」「십이기十二紀」등 모두 이십여만 자에 걸친 저작을 만들었으니, 여기에는 천지, 만물, 고금의 일에 관한 것이 전부 갖추어져 있다고 해서 서명을『여씨춘추』라 하였다.”_『사기』「여불위열전」

김근 교수의 역작 『여씨춘추』 완역개정판 출간

지난 1995년 국내 최초로 『여씨춘추 역주(전3권)』(민음사)를 소개한 바 있는 김근 서강대 교수가 17년만인 2012년 3월 개정판 『여씨춘추』를 펴냈다. 글항아리 동양고전 시리즈 제5권으로 출간된 이번 개정판에서는 예전 역주본의 소소한 오류들을 바로잡고, 번역 문체도 현대 한국어에 맞게 자연스럽게 바꾸었다. 한문원문과 낱말 유래·풀이 등을 생략함으로써 교양 고전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게 체제를 갖췄다. 물론 『여씨춘추』 원전 전체를 완역했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국내 독서계에 고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여씨춘추』 또한 중요한 고전으로 주목받고 있다. 책에 실린 해제를 중심으로 아래에 『여씨춘추』가 어떤 책인지, 그 출간의 의미는 무엇인지 등을 짚어보았다.

여불위는 누구인가

여불위呂不韋(기원전 ?~기원전 235)는 전국 말기의 대상인이자 정치가다. 원래는 위衛나라 복양陽(오늘날 허난성河南省 푸양 서남쪽) 사람이었는데, 나중에 한韓나라에서 장사를 하여 양적陽翟(오늘날 허난성 위현禹縣) 땅의 대부호가 되었다. 그가 조趙나라의 도읍 한단邯鄲에서 장사할 때, 조나라에 인질로 잡혀온 진秦나라 공자 자초子楚를 만나게 되었다. 이때에 여불위는 자초의 신분이 범상치 않으므로 그에게 투자하면 큰 이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그를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또 앞으로 진나라의 왕위를 계승할 수 있도록 일을 도모해 주기로 결정했다. 이때부터 여불위는 장사를 그만두고 정치 활동에 뛰어들게 되는데, 이로써 그의 정치 생애는 시작되었다. 당시 진 소왕의 뒤를 이을 예정이었던 태자 안국군安國君은 화양부인華陽夫人을 가장 총애했지만 그녀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여불위는 진기한 보배를 예물로 바치고 여러 차례 진나라에 들어가 화양부인을 만나 설득 공작을 벌인 끝에 자초를 안국군의 양자로 들여보내 태자로 세우는 데에 성공했다. 안국군(그가 곧 효문왕孝文王임)이 즉위한 지 불과 일 년 만에 죽자 왕위를 이어받아 장양왕莊襄王이 된 자초는 여불위를 상국相國에 임명하고 문신후文信侯에 봉했다(기원전 252). 장양왕이 죽은 후에 그의 아들 영정盈政(나중에 진시황이 됨)이 어린 나이로 왕위를 계승하고 여불위는 계속 상국으로 남아 있으면서 영정의 중부仲父로 높임을 받았다. 식읍으로는 남전藍田 12현과 하남의 낙양洛陽 10만 호를 소유했으며, 또한 연燕, 조趙 두 나라 간의 불화를 이용해 연나라가 바친 하간河間 땅 열 개의 성을 갈취한 후 자신의 봉지로 만들기도 했다. 영정이 성년으로 자라나 직접 정무를 맡으면서 여불위는 파면되어 봉지인 낙양으로 은퇴했는데 그러고 나서 얼마 안 있어 다시 촉 땅으로 유배를 당했다. 이때 그는 울분을 삭이지 못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여불위는 신흥 대상인으로부터 신흥 봉건 관료 대지주로 전환된 일생을 살면서, 진나라의 번영과 강성을 위하여 크게 공헌한 사람이었다. 그는 장양왕 원년부터 진시황 10년에 이르기까지 13년간 상국의 자리를 지켰고, 특히 진왕이 왕위를 계승했을 초기에는 모든 정령이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였다. 그는 정치와 군사에서 많은 개혁을 단행해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일찍이 동주東周의 임금이 규합한 제후 연합 세력의 침공을 막아냈고, 이어서 주나라를 멸망시켰으며, 삼진三晉을 포위하고 초나라를 패퇴시켰다. 위魏나라 37개 성을 함락하고, 한나라의 성고成皐와 영양榮陽 등의 땅을 평정했으며 삼천三川, 태원太原, 동군東郡 등을 세움으로써 나중에 진나라가 나머지 여섯 제후국을 통일하는 기초를 다져놓았다. 그러므로 진나라로서는 여불위가 상앙商央과 위염魏殮의 대를 잇는 주요 공신이 되는 셈이다.
여불위는 적극적으로 통일 사업을 추진하고 봉건 중앙집권제를 건설하기 위해 그 이론적인 근거를 찾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즉 통일 봉건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하나의 사상 준칙? 규범, 즉 통치 이데올로기가 절실히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여불위는 자신의 문하에 불러 모은 수많은 식객을 조직하여 『여씨춘추』를 편찬했던 것인데, 여기서 그는 선진 제자백가의 학설을 종합함으로써 이른바 잡가雜家적 성격의 학설을 세웠던 것이다.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여씨춘추』는 모두 26편, 20여만 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여불위와 여씨춘추의 사상

반고班固가 『여씨춘추』를 잡가 류의 작품으로 분류한 이래로 여불위는 잡가의 사상가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실제와 부합하지 않으므로 그의 사상은 역사적 관점에서 재조명해야 한다. 『여씨춘추』는 『황제사경黃帝四經』 및 후대의 『회남자淮南子』 등과 더불어 황로黃老학파에 속한다. 이 책이 비록 여러 사상가의 학설을 널리 채용한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을 마구잡이로 끌어다가 베낀 잡탕은 결코 아니고 어디까지나 초기 도가의 사상을 기본 원칙으로 삼고 각 사상의 장점들을 널리 흡수하여 새로운 학설을 형성한 것이다. 『여씨춘추』는 노자老子를 대표로 하는 초기 도가의 사상을 계승함에 있어서도 역시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 아니라 새롭게 개조하는 작업을 거쳤다. 그래서 여불위를 비롯한 황로학파를 신도가新道家라고도 부르는 것이다.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기 직전에 궁정 내에서 벌어졌던 격렬한 권력 투쟁, 다시 말해서 진왕 영정과 여불위 사이의 투쟁도 역사적으로 분석하면 결국은 여불위를 대표로 하는 신도가 세력과 영정을 대표로 하는 법가 세력 사이의 모순 및 충돌로 귀착된다. 당시에는 진나라의 천하 통일이 필연적인 추세에 있었으므로 통일 후에 어떠한 정치적 전략으로 천하를 다스릴 것인가 하는 것이 통치자 앞에 대두된 현실 문제였다. 이 때문에 진나라 통치 집단 내부에 커다란 두 개의 분파가 생기게 되었는데, 그 하나가 영정을 우두머리로 하는 정치 세력으로서 법가의 군주 전제론을 견지했고, 다른 하나가 여불위를 우두머리로 하는 정치 세력으로서 자연에 순응하고 백성들과 삶을 같이해야 한다는 신도가의 원리를 내세웠다. 여불위가 신도가를 선택한 이유는 진왕과 권력을 나누어 누리려는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장래 진 제국의 원대한 이익을 도모하려는 목적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여불위가 대량의 인력과 물력을 동원하여 방대한 저술을 기획한 것은 단지 그의 황로사상에 대한 개인적인 애호에서 출발한 것만은 아니고, 이와 같은 원대한 비전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진 제국의 장기적인 안정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여불위는 당시 전횡을 일삼고 날로 사치스러워지는 진왕을 규제하고 권면해야 할 필요를 절실히 느꼈던 것이니, 이것이 바로 그가 『여씨춘추』를 편찬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였다. 이 점은 『여씨춘추』 「서의序意」에서 충분히 알 수 있다. 즉 「서의」에 보면 황제가 전욱專頊을 가르치는 구절이 나오는데, 여기에는 『여씨춘추』에 제기된 사상을 규범으로 하여 진왕을 훈계함으로써 그로 하여금 진정으로 “백성들의 부모가 되게爲民父母” 하려는 의도가 들어 있다.
이 투쟁이 끝내 진왕의 승리와 여불위의 패배로 끝남으로써 신도가는 영락하고 법가의 군주 전제 사상이 일방적으로 정치계에 팽배해져서 진나라 통일 후 통치자들의 정치 강령으로 받들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결국 진 왕조의 운명을 단축시킨 계기가 되고 말았다.

『여씨춘추』가 미친 영향력은 어떠한가

중국의 전통적인 정치 및 학술 사상은 한대漢代에 형성되었다. 중국의 문화 학술을 한학漢學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체로 한대 학술의 골간은 경학經學이며, 이는 한대 정치를 지지한 정신적 역량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대의 인사들은 대부분 『여씨춘추』의 영향 아래 경학을 파악했고, 뿐만 아니라 『여씨춘추』가 정치에 끼친 영향을 경학의 영향으로 착각할 정도였으므로 『여씨춘추』를 떠나서는 한대 학술의 본질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한대 학술 사상의 특성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여씨춘추』가 한대 학술과 정치에 끼친 영향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물론 한대의 사상은 유가 이외에도 도가, 법가, 관자管子 등 많은 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그러
나 이들 사상의 영향은 그 범위와 한계가 분명하여 『여씨춘추』처럼 깊숙이 침투하여 융화하는 힘은 갖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각가의 영향은 그 체계가 분명하고 또한 이를 설파하는 사람들이 사상의 원류를 일부러 피휘避諱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쉽게 파악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씨춘추』의 경우는 비록 사마천司馬遷, 유향劉向과 같은 대학자들에 의해서 중시되긴 했지만, 당시의 반진反秦 분위기 아래에서 그 사상의 원류를 공개적으로 함부로 말하지 못했던 것이다.
『여뺾춘추』는 선진先秦 경전 및 제자백가의 집대성으로서 『사기史記』 「여불위열전呂不韋列傳」에서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이리하여 여불위는 식객들로 하여금 각기 그들의 들은 바를 저술케 하고 이를 모아 따져서 「팔람八覽」 「육론六論」 「십이기十二紀」 등 모두 20여만 자에 걸친 저작을 만들었으니, 여기에는 천지, 만물, 고금의 일에 관한 것이 전부 갖추어져 있다고 해서 서명을 『여씨춘추』라 했다.”

사마천이 강조한 것은 “천지, 만물, 고금의 일에 관한 것이 전부 갖추어져 있다”에 있으므로, 「팔람」과 「육론」을 앞에 놓고 「십이기」는 뒤로 놓았다. 또한 그의 「답임안서答任安書」에서 『여씨춘추』를 ‘여람呂覽’이라고 쓴 것으로 보아 사마천은 「팔람」을 『여씨춘추』 전서를 개괄한 것으로 본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사마천이 본 바는 여불위의 의도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 듯하다. 즉 『여씨춘추』에서는 「서의」를 전서의 맨 뒤에 두지 않고 「십이기」 뒤에 두었으며, 아울러 스스로 이 책을 ‘춘추’라고 명명했으니, 이는 「십이기」로써 전서를 총괄하여 이름을 삼은 것이 된다. 그러므로 여불위 및 그 문하인들의 안목에서 본서의 골간은 「십이기」이지, 「팔람」 「육론」이 아님이 명백한 것이다.
「서의」의 내용 역시 「십이기」의 내용을 개괄하고 있는데, 그가 「십이기」를 지은 목적은 진나라가 장차 천하를 통일할 것에 대비하여 정치상의 최고 원칙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십이기」에서 모자라는 부분은 「팔람」과 「육론」을 지어 보충한 것이었다.
「팔람」의 팔八은 팔방八方의 팔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팔람’이라고 말한 것은 “팔방을 두루 관람하다”라는 뜻이다. 「육론」의 육六은 육합六合(곧 천지사방天地四方)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육합을 궁구窮究하여 논하다”라는 뜻이다. 「팔람」 「육론」의 성격은 사마천이 말한바 “천지, 만물, 고금의 일에 관한 것이 전부 갖추어져 있다”와 꼭 같다.
그러나 여불위의 의도는 여기에 있지 않았다. 다만, 고대 중국인들은 숫자상으로 잘 어울리는 형이상학적인 형식을 매우 좋아했으므로 『여씨춘추』의 편찬자가 반드시 나눌 필요가 없는 것을 나누었거나, 또는 반드시 중히 여길 필요가 없는 것을 중히 여김으로써 억지로 숫자상의 형식을 맞추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래서 전서가 「육론」에 이르러서는 내용이 바닥난 느낌도 없지 않아 있다.
『여씨춘추』는 선진 제자諸子의 사상에 대하여 총괄적인 비판을 가한 후에 이를 흡수했다. 「불이不二」 편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노자는 부드러운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공자는 어진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묵자는 몸을 다 갈아서 봉사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관윤關尹은 맑은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열자는 빈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진변陳은 도를 따라 행하여 치우침이 없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양자楊子는 자기 자신을 중요하게 여기고, 손자孫子는 기세를 중요하게 여기고, 왕료王廖는 먼저 계략을 완벽하게 세운 후 싸우는 것을 중히 여기고, 아량兒良은 기교를 써서 싸우는 것을 중히 여긴다.”

『여씨춘추』는 이러한 여러 가지 다른 사상을 하나로 통일해야 한다고 여겼으므로 「불이」 편에서 계속하여 “통일되면 다스려지고 제각기 존립하면 어지러워지며, 통일되면 안정되고 제각기 존립하면 위태로워진다”라고 설파한다. 즉 사상이 통일되고 나서야 비로소 “모든 사람은 각기 달라서 어떤 이는 어리석고 어떤 이는 슬기로우며, 또 어떤 이는 솜씨가 정교하고 어떤 이는 조잡하지만 이를 가지런히 하면 이들이 힘과 능력을 다함이 마치 하나의 구멍으로부터 나오는 것 같다”라는 경지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유가로 뼈대를 만들고 각 학설을 융합하는 구조

『여씨춘추』의 이러한 담론은 궁극적으로 신흥 정치 세력이 통일중국을 유지해 나가는 데에 이용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였으며, 이는 당시 각 사상의 장점을 흡수함으로써 완성한 것이다. 『여씨춘추』는 결코 각 학파의 학설을 균등하게 취급하거나 각 학파의 관점을 원래 상태로 단순하게 병합시키지 않고 흡수한 각 학설에 새로운 내용을 부여했으니, 우선 유가의 사상으로써 뼈대를 만들고 여기에 각 학설을 융합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여씨춘추』의 각 편을 살펴보면 유가 사상이 공자의 초기 유가에 비하여 현저하게 개조되거나 발전된 사실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유가의 군권君權 옹호 사상에 대하여 『여씨춘추』는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변화가 없으면서도 독특한 형식을 만들어냈으니 그것은 새로운 천자天子를 세우는 것, 다시 말해서 중앙 집권적인 국가의 건립을 옹호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근청謹聽」 편에서 “이제 주나라 왕실도 멸망되고 천자도 이미 끊어졌으니 어지러움이 천자가 없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다”라고 했고, 「시군恃君」 편에서는 “그러므로 뗃하를 위하여 길이 걱정해주는 일에는 천자를 두는 일만 한 것이 없다”라고 했으며, 또한 「집일執一」 편에서는 “천하에 반드시 천자가 있어야 하는 것은 천하를 하나로 통일하기 위한 것이고, 천자가 반드시 권력을 하나로 쥐어야 하는 것은 천하를 뭉치게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로 통일되면 다스려지고, 둘로 갈라지면 어지러워진다”라고 설파했다.
공자가 주 왕조의 통일 천하를 옹호한 것은 사실이나 그의 사상에서 전제專制의 문제, 즉 중앙집권제를 강조한 부분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므로 『여씨춘추』의 이 부분은 선진의 유가 사상을 일보 발전시킨 것임을 알 수 있다.
『여씨춘추』는 유가 사상을 그대로 옮겨오지 않고 이를 시대적 요구에 맞추어서 새롭게 재해석을 가한 것처럼 법가, 농가, 묵가, 음양가 등의 사상에 대해서도 대체적으로 이 원칙을 준수하여 흡수했다. 그래서 『여씨춘추』 중의 법가는 유가화儒家化한 법가이고, 묵가는 병가화兵家化한 묵가이다. 예를 들면, 『여씨춘추』는 묵가의 사상 중에서 이른바 절장節葬, 즉 장례를 검소하게 치러야 한다는 주장에 찬동하여, 당시의 사치스런 장례 기풍을 「절상節喪」 편에서 신랄하게 비판했다.
반면에 묵자의 비공非攻 사상, 즉 공격 행위를 비난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비판을 가했다. 왜냐하면 이것은 새로운 정치 세력인 신흥 지주 계급이 진행하는 봉건 통일전쟁의 수요에 맞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불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란振亂」 편에서 비판했다.
『여씨춘추』는 의로운 군대를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회총懷寵」 편에서 “의로운 군대가 오면 이웃 나라의 백성들이 그들에게 모여드는 것이 마치 흐르는 물과 같고, 주살할 나라의 백성들이 의로운 군대가 오기를 바라는 것이 마치 부모를 바라보는 것과 같으며, 행군하는 곳이 멀면 멀수록 백성을 얻는 것도 더욱 많아지니, 군대가 칼날을 교차시키지 않았는데도 백성들의 복종하는 속도가 변화하는 잠깐 사이의 시간과 같다”라고 설파한다. 다시 말해서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수단을 써서 중국 통일의 목적을 달성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으로부터 우리는 『여씨춘추』가 묵가 사상을 신흥 봉건 정치 세력의 수요에 부응하는 변형된 사상으로 개조한 것을 명백히 볼 수 있다.
『여씨춘추』는 명확한 목적과 대체로 통일된 학술적 견해로 예정된 계획에 따라서 편찬된 책이다.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이 책은 전체적으로 기, 람, 론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졌으며, 이중에서도 특히 기를 뼈대로 한다. 「십이기」는 음양가의 「월령月令」을 채용하여 편찬 체제로 삼았는데, 이는 『관자管子』의 「유관幼官」과 「유관도幼官圖」를 모방하여 쓴 것으로서 각 편의 논문을 춘, 하, 추, 동의 사계절 아래에 분배한 형태다.
『여씨춘추』가 봄(춘계)에 배치한 글에는 「본생本生」 「중기重己」 「귀생貴生」 「정욕情欲」 「진수盡數」 「선기先己」 등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양생養生의 방법을 논하고 있다. 음양가에서는 봄을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로 보기 때문에 봄의 덕德은 삶生을 주관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여씨춘추』는 도가에서 말하는 양생 방면의 문장을 춘계에 배치한 것이다.
여름(하계)에 해당되는 글들은 대부분 교육과 음악에 관한 것이다. 여름은 만물이 우쩍 자라나고 식물의 가지와 잎들도 무성해지기 때문에 여름의 덕은 자람長, 즉 발육과 생장을 주관한다고 믿었
다. 그래서 『여씨춘추』는 교육과 음악에 관한 논문들을 여름에 배치한 것이다.
병가와 법가에서 전쟁에 관하여 논한 문장들은 가을(추계)에 놓았는데, 이는 가을의 덕은 쇠락함과 죽임肅殺을 주관한다고 여기는 음양가의 이론을 채용했기 때문이다.
또 음양가들은 겨울의 덕은 사망死을 주관하고, 겨울의 혹독한 추위는 만물에 대한 인내의 시험이라고 여겼다. 이러한 어렵고 힘든 환경 아래에서는 마땅히 충의, 절개, 지조, 중용, 검약 등의 덕목이 강조되어야 한다. 그래서 「절상節喪」 「안사安死」 「지충至忠」 「충렴忠廉」 「사절士節」 등의 글이 겨울(동계)에 배분되었다.
「팔람」과 「육론」도 각기 논문 별로 일정한 주제에 대하여 논술을 전개하고 있어서, 천문, 지리, 정치, 경제, 생산기술 등 모든 분야에 미치지 않는 것이 없다. 또한 어떤 경우는 각 람覽의 여덟 편과 각론論의 여섯 편이라는 숫자를 맞추기 위하여 형식에 치우치다 보니 내용의 질을 오히려 떨어뜨린 측면도 보인다. 우선 내용이 명확히 중복되는 부분이 있는데, 예를 들면 「절상」과 「안사」, 「거우去尤」와 「거유去宥」, 「응동應同」과 「소류召類」 등은 본래 같은 주제인데 두 편으로 나누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심지어 내용 간에 서로 저촉되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면 「집일執一」에서는 정치상의 통일을 주장해 놓고서 「신세愼勢」에서는 국가가 크면 클수록 다스리기가 어렵다고 하는 이른바 분봉 제후의 필요성을 피력하고 있다. 『여씨춘추』가 비록 이러한 결점을 어쩔 수 없이 갖고 있기는 하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내용이 풍부한 학술 저작임에는 조금도 의심할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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