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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자대학교 학생운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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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상품명 이화여자대학교 학생운동사
정가 ₩40,000
판매가 ₩3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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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백산서당
ISBN 9788973277216
출간일 2021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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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시대의 필요와 정신을 추구해온 이화의 역사는 대략 두 줄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각각의 시대의 결핍과 시대정신을 적극적으로 맞닥뜨려 수용하는 것과 함께 이화의 출발 지점인 여성의 정확한 자리매김을 향한 노력이 그것이다. 이 책의 출발과 지향도 그 가치의 인식과 공유를 위한 것이었으며, 그런 이유로 서술 과정과 결과에도 그 지향이 반영되었다. 이화 학생운동의 역사와 여성의 삶을 확장시켜온 이화의 짧지 않은 경험을 읽어가는 표지판으로 이화 학생운동의 역사와 여성 부분을 간략하게 정리했다.  

목차

1부 여성과 민족의 자주성을 위한 이화인의 활동 : 1886-1945
1장 여성들이 만들어낸 배움의 집 - 이화학당의 시작
1. 여성제도교육의 시작 : 이 땅 여성의 삶을 확장하다ㆍ25
2. 이화학당이 추구한 교육이념 : 자신의 삶을 확장하고 조국과 공동체에 기여하다ㆍ28
3. 이화학당의 성장과 그것이 갖는 사회 개혁적 의미ㆍ30
2장. 학생 자치활동과 졸업생의 사회활동
1. 교육의 결과물을 나누는 이화 졸업생의 사회활동ㆍ35
2. 학생 자치활동과 계몽활동ㆍ38
3장. 국권 회복을 위한 이화의 독립운동
1. 국권침탈의 시작과 이화의 저항ㆍ41
2. 3.1 독립만세운동과 이화ㆍ45
3.1 독립만세운동의 준비|이화 학생들의 독립만세운동|이화 졸업생들의 독립만세운동
3. 3.1 독립만세운동과 근대여성의 탄생ㆍ54
4장. 1920년대의 학생운동과 이화
1. 1920년대 조선의 교육상황과 활발해진 학생운동ㆍ57
이화 교육제도의 변화|다양한 학생조직과 활발해진 학생운동
2. 6.10 만세운동과 학생운동의 성장ㆍ61
3. 이화가 주도한 제2차 서울 여학생 독립만세운동 : 1929-1930년ㆍ63
5장. 1920, 30년대 민족운동과 민중계몽운동
1. 이화의 양적 성장과 지향을 향한 도전 : 신촌캠퍼스의 이화여전ㆍ68
2. 1920, 30년대 학생활동의 이분화ㆍ71
반제국주의, 반봉건주의 타파를 위한 고민과 실천
3. 1940년대 일제의 대대적인 억압과 이화의 고군분투ㆍ76

2부 1960년대 이화 학생운동
1장. 독립국가와 민주주의 완성을 위한 노력
1. 독립과 분단, 전쟁의 시기ㆍ81
2. 1950년대 이화의 학생활동ㆍ84
3. 4.19와 이화의 침묵ㆍ86
2장. 민족의 자주성을 위하여 - 이화대학의 한일협정 반대 투쟁
1. 한일협정 추진과 학생들의 저항ㆍ90
2. 이화대학의 한일협정 반대 투쟁ㆍ92
한일협정 반대 투쟁|한일협정 비준 반대 투쟁
3. 3선개헌 반대와 복장시위 : 1969년ㆍ102
3장. 1960년대 이화 학생운동
1. 정치적 저항과 함께 산업화의 그늘에 눈을 돌리다ㆍ105
불균등발전의 그늘|농촌의 변화와 농촌계몽대 활동
2. 진보적 서클의 탄생ㆍ108
3. 1960년대 이화 학생운동의 특징ㆍ110

3부 민주주의 억압에 대한 저항과 민중운동의 시대 : 1970년대 이화 학생운동

1장. 민중민주주의로의 확장
1. 노동자와 도시 빈민의 생존권 투쟁ㆍ115
2. 본격적인 서클 활동의 활성화ㆍ119
3. 산업화의 그늘과 여성 노동문제에 대한 관심ㆍ121
2장. 유신체제의 시작과 반독재 민주화운동
1. 강경한 학원탄압과 저항의 구도가 시작되다ㆍ124
대학에 대한 본격적인 통제와 탄압|학원탄압에 대한 이화인의 저항
2. 반헌법적인 유신체제의 시작ㆍ133
3. 우유부단과 좌절과 패배주의를 내던진 이화공동체의 시간 : 1973년ㆍ136
민주주의의 죽음을 상징하는 검은 리본|대규모 시위와 이화공동체의 밤
4. 학생 대중의 참여와 여성 문제 인식을 특징으로 하는 1970년대 초반 이화의 학생운동ㆍ142
5. 긴급조치시대의 시작과 확산된 유신반대 투쟁ㆍ145
민청학련을 통한 전면적인 저항|학생 대중과 함께 전개된 이화대학의 유신반대 투쟁 : 1974년|언론과 종교계의 저항
3장. 긴급조치 9호와 저항의 시기
1. 긴급조치 9호와 민주주의의 퇴행ㆍ154
2. 긴급조치 9호와 이화 학생운동ㆍ157
모든 학생활동이 정지되다|행동은 대담하게, 말은 겸손하게 : 동아 언론 지원 활동|새벽을 기다리며 : 긴급조치 9호 세대|이화대학 서클의 재활성화
3. 1970년대 후반 노동 현실과 학생운동의 연대ㆍ166
4. 긴급조치 철폐와 학원 자유를 위한 투쟁 : 1977-1978년ㆍ169
5. 전면적인 반유신 투쟁과 유신체제의 몰락ㆍ173
4장. 민주주의와 민중연대를 위한 1970년대 이화 학생운동
1. 1970년대 한국 사회와 학생운동ㆍ179
2. 1970년대 이화의 학생운동ㆍ182
민중민주주의로의 확장과 여성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전통문화에 대한 탐구와 재창조 작업의 확산|농촌활동과 빈민 활동|야학의 활성화와 초보적인 민중연대

4부 학생운동의 성장과 민중연대의 시기 : 1980년대 이화 학생운동
1장. 학생운동의 이념 변화와 새로운 모색
1. 학생활동의 재개와 민주화의 좌절ㆍ197
학생회부활추진위원회와 학원 자율화를 위한 준비|학생회 부활과 학원 자율화의 시작|5월 이화 민주화 대행진|민주화의 좌절|신군부의 권력 장악과 광주항쟁|1980년 봄에 대한 평가와 새로운 모색
2. 학생운동의 양적 발전과 새로운 모색의 시기ㆍ219
새로운 전환과 모색의 시기 : 1981년|학내 운동체계의 활성화 : 1982년|학원 자율화 투쟁과 대중화 : 1983년-1984년
2장. 학원 민주화와 학생운동의 질적 전환의 시기
1. 학원 자율화를 위한 투쟁ㆍ233
정권의 유화책과 복학생들의 자율화 투쟁|학원 자율화, 학내민주화의 진행 과정|학생회 부활과 학내민주화 운동의 활성화
2. 대학 연대투쟁의 시작 : 1984년 하반기~1985년ㆍ247
3. 미문화원 점거 농성과 반미투쟁의 확산ㆍ252
4. 학내민주화의 진전과 연대투쟁의 상시화ㆍ255
학원안정법 저지 투쟁|수입개방 반대와 민정당사 점거 투쟁|해방이화
5. 1980년대 전반기 이화의 민중연대, 노학연대
노동현장의 파업과 활발한 노학연대 활동
6. 민중 생존권과 민주적 권리를 위한 개헌 투쟁ㆍ271
파쇼헌법 철폐와 민주헌법 쟁취투쟁|경찰의 학교침범과 학생들의 저항, 수업 거부 투쟁
7. 학생운동 노선 논쟁ㆍ280
8.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과 시대적 가치를 향한 이화의 역사 : 이화 100주년ㆍ282
9. 애학투련과 학생운동의 타격, 그리고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다ㆍ285
아시안게임 반대|애학투련 이후 학생운동의 변화를 모색하다
3장. 6월항쟁과 이화대학
1. 호헌철폐 투쟁과 서대협의 건설 : 1987년 상반기ㆍ293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2. 6.10 민주항쟁과 이화대학의 6월 민주화 대투쟁ㆍ296
호헌철폐와 군부독재 종식투쟁|6.10 민주항쟁|시험거부와 등교 투쟁|6월항쟁 기간의 이화광장
3. 언론의 자율과 민주화를 위한 대학언론의 투쟁ㆍ312
4. 학생운동의 대중노선, 전대협 결성ㆍ314
5. 여대협의 구성과 활동, 그리고 이화대학의 역할ㆍ317
6. 1987년 대선과 민주 정부 수립의 실패ㆍ322
대선에 대한 다양한 입장이 표면화되다|민주 정부 수립에 실패하다
7. 노태우집권과 미국의 개방압력에 대한 반대 투쟁ㆍ330
4장. 학생들의 통일운동
조국통일 촉진 운동과 6.10 남북학생회담을 위한 노력|8.15 남북학생회담 성사 투쟁과 남북교류의 확산|89평양청년학생축전
5장. 노태우 정권에 대한 공세와 민중연대의 강화
1. 5공 비리 처벌과 노태우 정권 퇴진을 위한 투쟁ㆍ350
5공 비리 청산과 전ㆍ이 구속을 요구하다|현대중공업 노동자 투쟁과 노학연대|이화대학의 5월 반미운동|전교조 지원과 노동 악법철폐 투쟁: 1989년 하반기
2. 대학언론의 자율권과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ㆍ361
6장. 다양한 민중연대 활동과 1980년대 이화 학생운동의 변모
1. 학원민주화운동과 문화운동ㆍ367
학생 대중이 진행한 교육 민주화 싸움과 학내민주화를 위한 노력: 1988-1989년|예술성과 운동성의 결합, 문화운동의 활성화
2. 이화의 민중연대 활동-1980년대 후반ㆍ377
노학연대 투쟁의 변화: 현장 중심에서 공조와 연대로|폭넓어진 농촌활동, 농민과의 지속적인 연대: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활발하게 진행된 도시 빈민연대 활동: 1980년대 후반
3. 평등하고 자주적인 여성의 삶을 위하여: 변혁운동과 함께 전개된 이화의 여성운동ㆍ392
4. 1980년대 학생운동과 이화ㆍ396
5부 1990년대 학생운동의 새로운 모색과 대안
1장. 보수 대연합 구도에 대한 저항과 학원 자율화 투쟁 : 1990년
1. 이화 학생회의 전환 및 학원자주화투쟁ㆍ405
2. 보수 대연합 반대 투쟁과 민중연대 강화ㆍ408
3. 자주화를 위한 투쟁과 남북교류 추진ㆍ414
팀스피리트에 대한 문제 제기|학생운동이 추진한 남북교류사업|학원자주화투쟁의 질적 전환|대학언론 통제에 저항하고 언론 자율화를 위해 싸우다
2장. 노태우 정권의 공세와 학생운동의 치열한 대응 : 1991년
1. 수서 비리와 민생파탄에 대한 항의ㆍ424
2. 6공화국 최대의 대중투쟁-5월 투쟁ㆍ426
3. 학생운동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ㆍ433
4. 노태우 정권의 북방정책과 학생들의 통일운동ㆍ435
5. 제도개선을 통한 학원 자주화 사업ㆍ441
3장. 탈정치화 흐름과 이화 학생운동의 새로운 모색
1. 탈정치화 흐름과 학생회의 변화 모색ㆍ444
2. 다양한 학생 정치조직을 통한 대선 활동ㆍ450
3. 문민정부의 출범ㆍ454
4. 학생운동의 새로운 정신과 구조를 요구받다ㆍ456
학생운동 쇄신을 위한 조직의 재구성|학생운동의 진화를 모색하다
4장. 1990년대의 지속적인 민중연대 활동과 여성운동
1. 적극적으로 전개된 빈민 활동과 지역연대 활동ㆍ461
2. 여성의 문제와 그 해소방안을 확장해가다 - 1990년대 이화의 여성학, 여성운동ㆍ468
5장. 시대환경의 변화와 학생운동의 새로운 모색

6부 이화 민주화를 위한 유연하고 수평적인 연대
미래라이프대학 사태와 새로운 민주주의ㆍ485

기억하는 글 : 그들의 삶이 시대를 만들다ㆍ491

저자소개

이화여자대학교 민주동우회

출판사리뷰

시대의 필요와 정신을 추구해온 이화의 역사는 대략 두 줄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각각의 시대의 결핍과 시대정신을 적극적으로 맞닥뜨려 수용하는 것과 함께 이화의 출발 지점인 여성의 정확한 자리매김을 향한 노력이 그것이다.
이 책의 출발과 지향도 그 가치의 인식과 공유를 위한 것이었으며, 그런 이유로 서술 과정과 결과에도 그 지향이 반영되었다. 이화 학생운동의 역사와 여성의 삶을 확장시켜온 이화의 짧지 않은 경험을 읽어가는 표지판으로 이화 학생운동의 역사와 여성 부분을 간략하게 정리했다.
이화 학생운동의 역사
1886년 5월 31일. 이화학당이 열리고 한 명의 학생이 공부를 배우기 시작한 이 날은 한국 근대 여성 교육이 시작된 원년이다. 이화의 출발은 인간다움을 향한 여성의 오랜 열망과 그 열망에 대한 시대적 응답이었으며, 이화의 역사는 이 땅 근대화의 역사, 여성 교육의 역사와 흐름을 같이 하면서 걸어왔다. 교육을 통해 개인의 자아와 여성에 대한 억압의 질서를 해체하는 자각적인 삶을 발견한 이화인들은 더 나아가 역사의 굴절 속에서 진행되는 민족과 공동체의 아픔에도 늘 함께하고자 했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나라의 주권을 강탈당하자 이화 교정에서는 매일 오후 3시면 모든 수업이 중단됐고 학생들은 조국의 독립을 기원하는 기도회를 열었다. 강제합병 후 10년간 지속된 일제 무단통치에 저항하여 일어난 1919년 3.1독립운동 때 유관순을 비롯한 이화학당의 수많은 학생과 졸업생이 앞장서서 만세시위를 시작했고 끝까지 죽음으로 맞서며 투쟁했다. 그들은 박해받고 희생당한 어린 소녀들이 아니라 식민지 현실을 타파하고자 적극적으로 저항했던 학생운동의 선배들이다.
이화 학생들은 1926년 6.10만세시위, 1929년 12월의 제2차 서울 학생 독립시위운동에 참여했고 1930년 1월의 서울 여학생 만세시위를 주도했다. 이화 졸업생들의 독립운동은 상해와 미국 등 해외에서도 이어져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국권 회복을 위해 독립지사 후원 모금을 벌여나갔다. 많은 이화인이 스스로가 몸담고 있는 그 자리에서, 혹은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 나라의 주권과 자주를 위해 적극적으로 투쟁했다. 이화인의 독립운동은 시대적 굴레인 식민지 현실에 대한 저항이자 여성의 주체성을 억압하는 봉건 여성의 현실을 돌파하고자 한 선구적 움직임이었다.
이화인은 교육을 통하여 자아를 발견하고, 봉사해야 할 이웃을 찾아내고, 지켜야 할 나라와 민족을 품었다. 교육을 통해서 한 인간으로, 여성으로 찾아낸 자신의 존재를 현실적인 삶의 조건을 상승시키는 기회와 조건으로만 쓰지 않았다. 그 대신 교육이 필요하고, 가난한 삶의 조건을 벗어나기 힘든 이웃과 동포를 위해 자신이 받은 자각과 교육의 결과물을 나누었다. 그리고 당대의 시대적 조건과 상황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독립운동에 힘쓰거나 여성의 삶을 깨우치기 위해 헌신했다.
초기 이화의 이런 모습과 지향이 늘 같은 무게와 한결같은 모습으로 지속된 것은 아니다. 이후의 역동적인 한국 현대사에서 때로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이거나 시대정신에서 조금은 비켜서 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독립과 남북분단의 시기를 겪고 난 1960년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독재에 저항하는 학생들의 움직임이 거세게 분출했다. 반독재를 향한 국민적 저항인 4.19혁명에 이화인은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으며, 이 부끄러운 침묵은 이화인들 스스로 자각과 성찰의 기회를 갖게 했다.
이후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이 1964년 일본과의 한일협정을 추진하자 이화인은 자주적이지 못한 협정에 거세게 저항했다. 민족적인 합의를 외면한 채 진행된 한일협정에 대해서 반대시위와 농성으로 저항했고, 한일협정 비준 반대 서명운동과 세계 언론인에게 성명서를 보내는 등 시의적절하고 적극적인 저항 행동을 주도했다. 또한, 한일협정의 중요한 쟁점인 평화선을 지키는 데 실질적인 기여를 하고자 평화선 수호 경비정조립기금 모금 운동을 벌여, 1967년 ‘이화호’의 진수식을 가졌다.
1969년 박정희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위한 3선개헌을 강행하자 이화인은 성토대회, 복장시위, 기도회 등 다양한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저항에 나섰으나 치열하게 전개된 한일협정 반대 운동에 비해 소극적으로 표현되었다. 그러면서도 시대적인 대의에 흔쾌히 동참하는 이화인의 일체감은 복장시위와 기도회, 성토대회 등을 통해 저항의 집단적 정신과 성과로 수렴되었다. 동시에 학생들의 주장과 요구를 구성원 안에서만 가두고 공유하는, 적극성의 한계도 보였다. 대체로 1960년대 정치적 저항과 대응에 주로 머물던 한국 학생운동의 영역이 이화에서는 다양한 저항의 집단적인 표현으로 나타났고 채플이라는 형식을 만나 독특하고 효율적인 저항의 꽃을 피워내기도 했다.

1970년대는 헌법의 정지와 긴급조치로 상징되는 정치적 억압 시기였다. 박정희의 유신체제로 삼권분립과 의회민주주의가 심각하게 훼손되었고 대통령은 초헌법적인 국가권력을 행사했다. 노래와 영화 등 대중문화와 국민의 일상에 대한 강제와 구속을 통해 국민의 삶을 깊숙이 통제하고 강하게 억압했다. 저항에 대한 처벌도 강경해서 이 시기 수많은 학생이 구속되거나 강제로 학교를 떠나야 했다. 초헌법적인 긴급조치 9호는 1천 명 이상의 구속자를 낳았다.
이화인은 “우유부단과 좌절과 패배주의를 내던지고 헐벗고 굶주린 이웃과 억울하게 갇힌 학우들의 고난에 동참하자”는 정신으로 민주체제 회복과 자립경제의 확립, 그리고 학원 민주화를 주장하며 시위 농성과 철야기도를 진행했다. 수천 명이 참여하는 채플시위와 농성, 철야기도는 이화의 독특한 저항방식이었다. 총장과 교수들도 함께 했던 1973년 11월 28일의 철야농성은 이화공동체 신뢰의 시간으로 기억되고 있으며 다른 대학들의 민주화 투쟁을 견인해냈다. 1970년대 이화인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자기희생적 투쟁과 함께 산업화의 그늘에서 억압받고 소외당하는 민중의 고된 삶의 구조를 바꾸는 일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공장 활동이나 노학연대가 본격화되기 이전의 시기에 노동자 연대는 한계가 있었지만 동일방직 노동자 탄압 반대와 YH 노동자 생존권 투쟁에 연대하는 등 노동자의 탄압받는 현실에 함께하고자 했다.

유신독재가 끝나고 맞은 1980년 민주화의 봄은 짧게 끝났다. 학교는 강제로 문을 닫았고 신군부가 다시 국가권력을 장악했다. 군사정권에 의해 대학은 다시 비자율적인 통제와 억압상황에 놓였으나 광주항쟁을 통해 국가폭력과 항쟁의 의미를 경험한 학생들의 저항은 이전보다 훨씬 단호해졌다. 이화는 매년 5월의 ‘광주항쟁 계승 기간’을 통해 광주항쟁의 기억을 공유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려는 노력을 실천하는 동시에 책임자 처벌을 위한 투쟁을 계속했다. 1980년 5월 광주항쟁을 계기로 미국의 존재는 한국의 청년 학생들에게 이전과는 다른 의미를 가졌다. 학생들은 광주 민중을 학살한 군부정권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철회하도록 요구했고 동시에 민중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미국의 시장 개방 압력에 거세게 저항했다.
1980년대 들어 학생운동은 민주주의를 향한 정치적 저항의 구도와 역할뿐만 아니라 민중의 삶에 대한 애정과 민중이 주인 되는 삶의 구조를 열어야 한다는 열망에서 민중민주주의로의 성장을 경험한다. 노동자나 도시 빈민 등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들의 삶을 강박하는 경제ㆍ사회적 구조를 바꾸는 일에 함께 목소리를 높였다. 최저임금 보장과 노동 탄압 중지 등 노동생존권 투쟁에 함께 했으며 민주노조 건설을 지지하고 연대했다. 학생들은 폭발적으로 노동현장으로 이전했고 노동 탄압을 알리고 공조하면서 저항의 조직을 엮어내는 일을 했다. 철거 등 도시 빈민이 겪는 생존권의 위기 앞에서는 함께 싸웠다. 노동뿐만 아니라 우리 문화, 민중문화에 대한 발굴과 계승, 활성화를 통해 민중문화가 본래의 자리, 본래의 역할과 활력을 찾도록 애썼다. 여러 부문운동의 진출과 활성화를 통해 학생운동이 추구했던 가치와 지향을 살려 나가면서 학생운동의 한시성을 극복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화는 1985년의 학생회 부활로 상징되는 학원 민주화, 자율화를 쟁취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다. 학생활동을 억압하는 학원안정법에 저항하고 이대학보의 편집자율권 노력을 지지하고 연대했다. 학생들은 이화공동체의 주체로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학내민주화와 자치를 실현하기 위해 투쟁했다.
1987년 군사정권에 저항하고 민주제로의 개헌요구로 시작된 6월민주항쟁에서 이화는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시대의 문제이자 가치인 민주화를 향한 싸움에 한 역할을 감당했다. 연인원 2만 명이 참여해 민주화의 불꽃으로 타올랐던 87년 6월의 이화광장은 시대적 가치인 민주화 투쟁에 참여하는 역사적 자긍심과 이화인 서로를 향한 신뢰가 집약된 “함께 가는 이화”의 눈부신 공동체였다. 헌법을 개정하고 민주화의 형식을 이룬 6월항쟁 이후 민주 정부 수립을 위한 이화여자대학교 공정선거감시단 활동에도 2,700여 명의 이화인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런가 하면 6월항쟁의 결과로 만들어진 대선에서 분열과 패배를 경험한 학생들은 무기력과 환멸, 분노를 느끼기도 했다. 동시에 민주화운동의 정치적 상징에 갇혀 있던 학생운동이 민중이 주체가 되는 변혁운동으로 심화되고 학생들 자신이 다각적인 변혁운동의 장으로 이전하는 움직임도 보다 활발해졌다.
1980년대는 오랫동안 이 땅의 정신과 삶을 억압해온 분단을 극복하고자 하는 청년 학생들의 의지와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고 구체적으로 진행된 시기였다. 학생들은 대대적인 탄압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남북공동개최 요구와 남북학생회담 제안 등 분단구조에 균열을 내고 분단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통일운동에 앞장섰다. 이화도 학생회담 대표단에 참여하는 한편 북한 바로 알기, 통일학교 등 활동을 통해 통일에 대한 인식을 고양하는 대중적인 자주통일운동을 전개했다. 그 한편에서는 노동구조의 왜곡과 민중에 대한 탄압이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이며 따라서 노동자의 생존권 확보와 노학연대를 향한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 학생들에 의해서 치열한 노학연대, 민중 생존권 투쟁이 진행됐다. 한국사회의 가장 큰 모순과 투쟁 방향을 어디에 두느냐에 대한 시각 차이에서 비롯된 노선 차이는 학생운동의 발전적 분화인 동시에 분열이기도 했다.
한편 198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된 “자주여성 해방이화”의 시대정신은 이 시기 민주화운동과 함께 외세로부터 자유롭고 자주적인 이 땅 여성의 삶을 위한 노력으로 응집되었다. 해방이화는 남녀차별의 인식과 차별적인 관습의 반복을 깨고 자주적인 여성으로 서기 위한 이화인 스스로의 대응이자 저임금 여성 노동자, 분단상황의 그림자를 안고 살아가는 여성들, 그리고 우리 사회의 인권과 자유, 존중을 향한 연대의 걸음이기도 했다.
1990년대 들어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를 내건 문민정부의 등장으로 정치는 보수화되고, 한국 사회는 IMF 등 세계 경제 질서 속에서 재편을 강요받았다. 학생운동은 학생 개개인의 삶의 개선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과 거대 정치운동보다는 개별 학교 단위의 실질적인 투쟁 중심으로 재편되는 양상을 보였다. 학생회는 학생들의 삶에 기반한 학생회를 표방했고, 한편에서는 학생회 중심의 정치투쟁이 아니라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학생들이 각자의 조직을 통해 정치 활동을 추구하는 학생 정치조직 시대가 열리게 됐다.
2000년대의 학생운동은 새로운 정치 활동에 대한 모색과 함께 환경과 여성 등 생활 속의 변화, 진보적 학문풍토 조성, 그리고 교육권 확보를 위한 투쟁으로 모아졌다. 2016년 학교의 독단적인 운영시스템과 교육부의 졸속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된 미래라이프대학 사태는 “주동자 없는 느린 민주주의”로 표현된, 유연하고 수평적인 연대를 보여주었다. 철저하게 민주적으로 이루어진 시위형태와 구성원의 동질적인 의식은 새로운 사회운동의 형태로 진화하는 토대와 계기를 주었다고 평가받는다.
이화의 학생운동은 거의 언제나 그 시대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에 전면적으로 대응했다. 식민지 현실을 타파하고 독재에 저항하고 나라의 자주성을 주장하고 분단을 극복하기 위한 통일운동의 물꼬를 텄다. 또한, 산업화와 신자유주의 그늘에서 억압받고 소외당하는 기층민중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노동자, 빈민과 연대해서 그들의 삶을 강박하는 사회경제적 구조를 바꾸는 일에 함께했다.
한국의 학생운동은 민주주의, 반외세 민족주의, 그리고 사회적 약자인 민중에 대한 공감과 연대의 특징을 갖는다. 학생운동이 갖는 선도적인 성격으로 여타 사회운동이 자리 잡기 이전에 학생운동은 사회 각 부문운동이 태동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고 거의 언제나 그 앞에서 스스로를 던지는 보병의 역할을 해나갔다. 그러면서도 특정 이론이나 집단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은, 학생들 스스로의 방향성에 의해 움직였다. 68혁명으로 상징되는 서구의 학생운동과도 구분되는 지점이다. 그 과정에 문제가 없지 않았고 아픔도 컸지만 학생들의 뜻과 그 뜻이 향했던 길은 이 땅 민중과 함께 역사적 진실을 향한 탐색이자 시대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 지난한 투쟁이었다.

이화, 이 땅 여성의 삶을 확장해오다
여성의 자주성과 자유로움, 그리고 평화를 바탕으로 참다운 인격적 공동체를 이루고자 했던 초기 이화의 정신은 식민지와 독재, 민주화와 산업화의 격랑을 겪으면서 치열하고 폭넓게 진화해왔다. 한국 근현대사의 장에서 이화는 크게 두 가지 모습으로 존재, 혹은 대응해왔다. 하나는 한국 사회의 현장에 충실하여 적극적으로 저항하고 대응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화의 출발 지점인 여성의 목소리를 내는 일이었다. 몇몇 세부적인 지점을 제외하면 그 두 가지는 대체로 충돌하거나 길항하는 대신 서로를 보완하거나 상승시키는 힘으로 작용했다. 그건 여성에게 가해지는 모순 내지는 억압이 사회구조와 정치지형의 변화와 상관없이 늘 지속됐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또한 이화대학의 민주화운동이 구분되는 다른 지점, 혹은 이화가 지니게 된 여성주의적 생명의 특질이기도 하다.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 여러 사회운동의 과정에서 여성은 인적 자원의 희소성과 남성 중심 구조로 인한 제약이 없지 않았고 동시에 운동현장에서의 성적 차별과 그것을 극복해야 하는 이중의 고충을 겪었다. 독립운동과 1960년대 한일회담 반대시위, 1970년대 민주화 투쟁에서 여성들은 시대적 과제를 돌파하는 주체로 활동했으나 학생운동의 구조에서 보조적인 위치로 자리매김 당하는 일이 많았다. 때로는 남성의 목소리를 대변하거나 남성 운동가가 존재하기 위한 물적 토대를 제공하는 역할에 한정되도록 강요되는 분위기도 없지 않았다. 그 경우 때로 남녀의 역할분담 구조를 뛰어넘는 큰 생명의 품으로 작용하기도 했지만 많은 경우 여성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제약으로 작동했다. 그것은 극복해야 할 벽인 동시에 여성의 관점과 위치를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는 힘의 반어적 원천이기도 했다.
그런 제약 속에서 여성에 대한 오랜 억압의 질서를 타파하고 불평등한 여성의 부당한 삶의 조건에 함께 저항하고 연대해 온 이화의 역사는 이 땅 여성의 삶에 늘 새로운 물줄기를 틔우면서 여성의 삶을 확장시켜왔다.
초창기 이화인들이 교육을 통해 스스로의 자각과 삶의 내용을 갖춘 후 다른 여성들에게 그 교육의 기회와 결과물을 나누었던 것처럼 1970, 80년대 이화인은 여성차별과 저임금의 이중 억압에 시달리는 여성 노동자를 위한 생존권 지원 투쟁과 다양한 연대 활동을 했다. 기층민중 여성으로부터 사무직 여성에 이르기까지 성차별을 타파하고 우리 사회의 남녀평등구조를 이루기 위한 투쟁에 주도적으로, 때로는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함께 했다. 메이퀸 등 여성을 대상화하는 축제를 없애고 모든 이화인이 주인 되는 대동의 여성해방문화를 이화공동체 안에서 구현해냈다. 그와 더불어 치열한 이론의 탐색을 제공했다. 1977년 여성학 강좌개설, 1982년 대학원에 여성학과 개설을 통해 여성의 억압을 만들어내는 사회구조의 탐색과 고민을 공부하는 한편 여성 억압의 현실구조를 발전적이고 진취적으로 해체하는 창조적인 이화인을 키워냈다.
1984년과 85년 공권력에 의한 여학생 성추행과 성고문 사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과정에서 여학생대표자협의회가 만들어졌고 이화는 여대협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자주여성”의 기치 아래 여성제, 여성영화제, 여성의 날 기념식 등 여성의 주체성과 자주성을 기반으로 한 활발한 기획과 행사를 꾸준히 벌여나갔다. 1980년대 총학생회와 여대협을 중심으로 여학생의 문제, 그리고 기층여성 문제에 주로 천착했던 이화의 여성주의 운동은 1990년 이후에 진일보한다. 다양한 직군의 여성 노동자 문제와 여성의 사회진출에 따른 불평등의 문제, 법률적인 불평등의 해소와 성적 폭력에 대한 대응 등으로 보다 범위가 확장되고 여성 개개인의 삶과 밀착된 주제로 변모해갔다.
또한 여성의 자주성과 독립된 자아를 가지고 학내활동의 주도적인 역할을 담담했던 이화인들이 졸업 후 사회진출 과정에서 겪게 되는 성적 불평등과 제도적, 관행적인 불평등문제를 여성 전체의 문제로 치환시키면서 여성 문제는 좀 더 보편적인 공론과 논의의 장으로 확대될 수 있었다.
백여 년 전에 발화를 시작한 이화의 처음 뜻은 이화의 후학들에게 여전히 같은 질문을 요구하지만 동시에 그 해답은 각각의 시대에 적절한 방식으로 진화해왔다. 1919년의 독립만세운동, 1973년의 철야농성과 기도회, 1987년 6월민주항쟁은 시대의 삶 속에서 여성의 능력과 시대에 대한 헌신의 조화로운 합일을 지향해 온 이화공동체의 역사이다. 담대한 실천이 필요한 역사의 순간마다 이화인은 하나가 되어 시대의 요구에 창조적으로 부응했다. 이는 주체성과 자주성을 자각한 이화공동체의 힘이자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지는 여성의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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