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우리는 해석자가 아니라 목격자다
[‘이후’의 말들]은 임지연 평론가의 세 번째 평론집으로, ?4.16 이후, 어떻게 말할 것인가?―수치심의 윤리와 증언문학의 가능성?, ?갱신되는 독법/들―1990년대 여성시의 역설에 대하여?, ?손상된 지구에서 생존하기―인류세와 한국문학? 등 19편의 평론이 실려 있다.
임지연 평론가는 말한다. “나는 지금 ‘이후’의 시간 속에 산다.” 여기서 ‘이후’란 세 가지 ‘이후’를 말한다. “4.16 세월호 사건 이후, 강남역 페미사이드 사건 이후, 그리고 지질학적으로 홀로세 이후가 그것이다.” 임지연 평론가의 말을 더 들어 보자면, “4.16 세월호 사건을 바라보면서 문학의 증언능력에 대해 생각하고, 강남역 사건 이후로 나는 어떤 여성 비평가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과 인간이 평화롭던 홀로세가 끝나고 인류세가 시작되었다는 최근의 지질학적 담론을 공부하면서 새로운 생태적 비전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인간, 자연, 기계의 관계성에 대해 깊은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4.16 이전, 강남역 사건 이전, 인류세 이전으로 우리가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나는 이 변화를 문학적으로 해석하고 이후의 비전을 모색하기 위해 이론적 개념들과 관점을 생성해야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세 번째 평론집이 나오게 되었다.” 요컨대 [‘이후’의 말들]은 세 사건들 ‘이후’, 증언자이자 여성 비평가이자 생태주의자로서 새로운 비평 주체가 탄생하고 정립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이때 임지연 평론가가, 그리고 그녀와 더불어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더는 그 이전으로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사실들이다. 예컨대 4.16 세월호 사건 이후 임지연 평론가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아감벤을 참조해 재차 확인하자면 증언(의 구조)이란 “증언 불가능성으로서의 증언”일 수밖에 없다는 점, 그래서 증언은 역설적이며 그만큼 복잡하다는 점, 이와 연동해 적어도 증언문학에서만큼은 ‘저자’의 개념이 변경되고 확장되어야 한다는 점, 그러나 “근원적으로 4.16은 치유되지 못할 것이며, 특히 유가족의 고통은 완전히 치유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 증언문학의 “미학적 문제에 대한 판단에 대해서는 아직 말하기 어렵다”는 점, 그렇지만 앞으로도 “문학은 고통받는 자의 언어로 고통에 대해 말하고, 더 적극적으로 고통을 경감시킬 의무가 있”으며 다행스럽게도 “시인들은 기존의 미학과 언어를 포기해야 하는 모험을 감행하면서까지 증언의 미학을 탐색하고 있다”는 점 등을 확인하면서, 마침내는, 시인은, 평론가는, 아니 우리 모두는 이제 더 이상 ‘해석자’가 아니라 ‘목격자’라는 진리에 직면한다. 이처럼 임지연 평론가의 비평은 알랭 바디우가 말한 ‘사건’ 이후 그에 충실하고자 부단히 고투한 한 비평 주체의 탄생 과정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인정해야만 하는 사실들을 (재)발견하고 그럼으로써 도래하는 진리를 옮겨 적는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임지연 평론가의 비평은 극히 실천적이다. 임지연 평론가의 다음과 같은 말은 그러니까 스스로 진실하다. “텍스트의 독법은 갱신된다. 아니 갱신되어야 한다. 그 갱신의 힘이 시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005 책머리에
제1부
013 4.16 이후, 어떻게 말할 것인가?-수치심의 윤리와 증언문학의 가능성
033 갱신되는 독법/들-1990년대 여성시의 역설에 대하여
050 여성혐오 시의 가능성과 불가능성
071 1990년대적인 것을 말하는 방법과 계보
제2부
093 손상된 지구에서 생존하기-인류세와 한국문학
112 혼종적 말하기의 지정학적 위치와 정치성-황병승과 채상우의 시
126 생태를 세속화하기-김종철,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에콜로지와 민주주의에 관한 에세이] 읽기
137 몸의 역설, 그리고 윤리적 결단으로서 글쓰기-오민석의 평론집 [몸-주체와 상처받음의 윤리] 읽기
제3부
149 기교주의자의 몸말-이인원, [그래도 분홍색으로 질문했다]
160 울퉁불퉁하고 무작위적으로 봉제된 사물들의 언어-금은돌의 시에 대하여
174 펄럭이는 은유의 그물에 낚이는 타자들의 물질성-박연준의 신작 시 읽기
186 인공언어 제작자, 지구-헵타포드의 비정한 세계의 기록-김준현의 시집 [흰 글씨로 쓰는 것] 읽기
201 시적 하이브리드(괴물, 병신)의 실패담에 대하여-최금진과 김이듬의 시
213 ‘강박적 말하기’라는 모순 회로와 ‘나를 설명하기’라는 윤리성-정철훈의 신작 시 읽기
제4부
225 나(세계)는 책이다!-한용국의 시
238 비휴먼적 세계의 주인공들-손미와 김준현의 시
249 시선의 정치성, 시선의 (탈)정체성-김기택의 시
257 기쁨의 윤리, 악몽의 구조-손택수와 김정수의 시
269 다자연과 기쁨의 시학-김형영의 최근 시
저자소개
임지연
출판사리뷰
[책머리에]
나는 지금 ‘이후’의 시간 속에 산다. 그렇게 되었다. 기존에 머물던 삶의 지반은 의도치 않게 부서져 떠밀려 사라지고 나는 새로운 지평 위에 서 있다. 삶의 외부는 이전과 다를 것이 없지만, 내가 참여하는 세계는 이전과 다르다. 그렇게 느낀다. 나에게 ‘이후’란 이동과 변화, 새로움과 관련된다. 이것은 좋은 일인가? 우선 그것은 고통을 전제한다. 이전의 것으로부터 이동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깨져야 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후’의 방향에 있으며, 변화에 대한 해석에 있다. 나는 그것을 모색하는 중이다. 그래야 잘 깨질 수 있다. 모색은 모든 역설적인 것들로 뒤범벅된 현상들의 연속이지만, 나는 기꺼이 그 어려움 속에서 기뻐할 것이다.
나의 글쓰기는 세 ‘이후’의 시간 속에 있다. 4.16 세월호 사건 이후, 강남역 페미사이드 사건 이후, 그리고 지질학적으로 홀로세 이후가 그것이다.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마치 내가 세 ‘이후’를 구상하고 기획한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정리는 사후적인 것이다. 나의 미욱한 글들을 다시 읽으면서 사유의 흔적과 궤적을 쫓아가다 발견한 것이기 때문이다. 4.16 세월호 사건을 바라보면서 문학의 증언능력에 대해 생각하고, 강남역 사건 이후로 나는 어떤 여성 비평가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과 인간이 평화롭던 홀로세가 끝나고 인류세가 시작되었다는 최근의 지질학적 담론을 공부하면서 새로운 생태적 비전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인간, 자연, 기계의 관계성에 대해 깊은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4.16 이전, 강남역 사건 이전, 인류세 이전으로 우리가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나는 이 변화를 문학적으로 해석하고 이후의 비전을 모색하기 위해 이론적 개념들과 관점을 생성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세 번째 평론집이 나오게 되었다.
세 ‘이후’는 개별적인 사건처럼 보이지만 사실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는 것 같다. 4.16 세월호 사건을 의미화하면서 해석자에서 증언자의 위치를 확보하려고 하였는데, 그것은 1990년대 여성과 문학을 읽어 내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해 주었다. 그리고 여성의 의미는 자연과 어떻게 배치되는가에 따라 확연하게 달라질 수 있었다. 자연(지구)과 여성을 등가적으로 배치했던 1990년대를 예각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얻게 되었다. 가이아 개념을 비판적으로 재설정하면서 여성과 지구, 생태, 기술, 증언 등의 개념들이 어떤 질서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직 그 계보와 체계를 짜 맞추지는 못하고 있지만, 향후 나의 글쓰기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세 번째 평론집은 2010년대를 살아 내면서 산출된 부끄러운 글 꾸러미이다. 지난 시기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지평의 사건들로 가득한 것 같지만, 현재의 사건들은 그것과의 연결 속에서 질적 차이를 갖는다.
제1부는 4.16 이후의 문제의식과 강남역 페미사이드 사건 이후에 읽은 여성에 대한 글들이다. 1990년대적인 것들도 이 관점에서 읽어 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제2부에는 생태와 혼종성, 몸에 대한 글들이 묶여 있다. 일관된 주제는 아니지만, ‘이후’라는 지평 위에서 읽고 쓰는 자로서 머무르고자 했다. 제3부와 제4부는 2010년대 중후반 왕성하게 활동했던 시인들의 시에 대한 글들이다. 우연히 내게 도착해 나를 스며들게 한 여러 시인들의 시에 사랑과 감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