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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보적 사유와 전복의 철학자, 철학자들의 철학자 장켈레비치의 ‘죽음’ 철학을 마침내 만나다
-한낮의 빛처럼 눈부시고 매혹적인 ‘죽음’ 철학의 기념비적 저작
-인간의 지혜가 닿을 수 있는, 언어의 가장 멀리까지 나아간 ‘죽음’ 사유의 정수
-누구나 알지만 아무 것도 밝혀지지 않은 ‘죽음’에 관한 진짜 비밀
-죽음이 익명화되는 시대에 단 한 번뿐인 삶과 죽음의 ‘신비’에 바치는 찬가
▶‘죽음’에 대한 생각에 던지는 독창적인 질문
“왜 누군가의 죽음이 늘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이 되는 것일까? 왜 이 정상적인 사건이 그처럼 호기심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인간이 존재한 지 이토록 오래되었는데도, 어떻게 죽음에 익숙해지지 않은 것일까?”(17쪽) 인간의 오랜 물음이자 문제적인 주제인 ‘죽음’에 대해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Vladimir Jankélévitch, 1903~1985)는 이런 의문을 던진다. 장켈레비치는 20세기 철학사에서 독창적인 목소리를 낸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음악학자이다. 2023년은 장켈레비치 탄생 12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장켈레비치의 대표적 저작인 이 책 『죽음』(La mort, 1966)은, 일찍이 유럽과 미국, 일본 등 많은 나라에서도 소개되었다. 마침내 한국사회에 출간된 이 책으로, 그동안 단편적으로 접했던 장켈레비치의 독창적인 철학과 그의 역설적인 죽음 사유를 온전히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죽음’ 사유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데, 『자유죽음』의 작가 장 아메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장켈레비치 사유의 심오함이 자신의 작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했으며, 레비나스는 『타인의 휴머니즘』에서 ‘충격적인 책’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장켈레비치는 “만일 죽음이 그 이전에도, 그동안에도, 그 이후에도 생각할 수 없는 것이라면, 우리는 언제 죽음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일까?” 물으며,(63쪽) ‘죽음’에 관한 생각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탐구한다. ‘죽음’에 대해 묻는다는 것은, 경험할 수 없는 첨예한 순간에 대해, ‘거의 생각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이고, 아슬아슬한 곡예이자 말에 도전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인 것이다.(96쪽) 장켈레비치의 ‘죽음’ 사유는 죽음을 정의하려는 시도이기보다, ‘형언할 수 없는 것’인 ‘죽음’의 성격을 전면에 드러내려는 작업이다. 이를 통해 삶에서 ‘죽음’의 자리를 새롭게 발견하고, 역설적으로 삶을 생성시키는 죽음의 충만한 가능성을 보여주려 한다. ‘노년’과 ‘죽음’에 대한 탐색이 절실한 시대에 출간된 장켈레비치의 기념비적인 저작 『죽음』은, 우리 시대 죽음 이해에 더욱 깊이 있는 본격적인 성찰의 장을 마련해 줄 것이다.
▶죽음의 역설로 다시 발견하는 삶
“한 사람의 죽음은 다른 사람의 의식을 필요로” 하는데,(56쪽) 장켈레비치는 죽음에 관한 세 개의 인칭을 구별함으로써, 우리가 죽음을 경험하는 다양한 차원을 보여준다. ‘일인칭의 죽음’은 ‘나’의 죽음으로, ‘나’는 “예외적이고 절대적인 사건”인 죽음을 경험할 수도, 알 수도 없다. 일인칭은, “지금은 내가 아니다! 지금은 다른 사람이다! 혹은, 나는 더 나중에!”(53쪽) 하는 식으로 죽음을 멀리 놓아둔다. “삼인칭의 익명성과 일인칭의 비극적 주체성 사이에는, ‘이인칭’이라고 하는 중간적이고 특권적인 경우”가 있다. ‘이인칭의 죽음’은 나와 가까운 사람의 죽음으로, 그 비통함과 절망으로 죽음을 실제적인 것으로 마주하게 해준다.(48쪽)
‘삼인칭의 죽음’은 실제 ‘죽음’을 은폐하거나 죽음을 얼굴 없는 익명의 다룰 만한 대상으로 만든다.(42쪽) 말하는 이 자신은 죽음에서 예외가 되는 삼인칭 철학은, “형언할 수 없는 것”(97쪽, 129쪽)인 ‘죽음’에 관해 “에둘러” 안전하게 말하는 “완곡어법과 눈속임으로” 나의 죽음을 가린다.(311쪽) 장켈레비치는 특히 역사적·사회적으로 죽음의 비극성이 제거되고, 죽음이 하나의 추상적 사건으로 다뤄지는 것을 비판하는데,(691쪽) 역사에서뿐 아니라 개인에게도 죽음이 익명화되는 것은 삶을 보호하기는커녕, 삶의 생기를 앗아가고 위태롭게 만든다고 말한다.
장켈레비치는 ‘죽음’을 기존의 철학 체계나 개념으로 환원하는 손쉬운 해결책에 반대하며, 무엇보다 “내 문제”로 죽음을 실감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때 비로소 죽음의 “실제성, 일인칭, 임박함이 한꺼번에 발견”(44쪽)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죽음’의 “재발견”(317~318쪽)은 “죽음이 삶을 둘러싸고 있는 동시에 삶에 스며들어” 있으며, 삶의 한계와 모순, 장애가 오히려 역설적으로 삶을 생성시키는 조건이라는 사실에 대한 발견이다. 그 익숙한 비극이 우리 존재를 떠받히고 있다는 낯섦과 새로움을 자각하는 것이다. 삶은 ‘그렇기 때문에’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에서 존재하며, 죽음은 그 삶의 “기관이자 장애물”(150쪽)로 존재한다. 인간은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진동하듯 흔들리고 있으며,(197쪽) “무사태평”과 “비탄” 양쪽을 오가는 양가적인 중간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다.(198쪽)
장켈레비치는 “죽음 이편의 죽음(제1부), 죽음 순간의 죽음(제2부), 죽음 저편의 죽음(제3부)”이라는, 죽음과 접해 있는 경계와의 접점에서 “형언할 수 없는 것”을 이야기하고 상상할 수 없는 것을 묘사하는 전대미문의 위험한 작업을 수행한다. 그의 ‘죽음’ 사유는, 시간의 경계에서 드러나는 죽음의 그 모든 역설을 통해, 다시 시작하는 것의 문제를 제기한다. ‘죽음’은 삶의 현장에서 고동치고 있는, 삶을 거듭 시작하게 해주는 동력인 것이다.
▶ ‘죽음’으로 가능해진 단 한 번의 유일함이라는 신비
이 책에서 장켈레비치는 철학적 논증만큼이나 문학과 음악의 언어와 예술을 넘나들며 ‘죽음’에 가까이 다가가고, 응축과 확장을 거듭해가는 시적 사유의 변주가 어떻게 새로운 인식으로 나아가는지 보여준다. “가장 가까이에서!”라는(56쪽) 죽음 사유의 위태로움과 “말에 대한 도전”(96쪽)을 기꺼이 받아들인 이 철학자는, ‘죽음’이라는 한계 조건이 역설적으로 열어가는 삶과 죽음의 놀라운 충만함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이 숭고하고 놀라우리만치 간단한 신비, 감춰져 있지 않은데도 그 어떤 피조물도 간파할 수 없는 이 신비”(693쪽)를 위해 바쳐진 걸작 『죽음』은, 삶은 우리 의지와 무관하게 주어졌지만, 그 삶과 죽음을 (재)발견하는 일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고갈되지 않는 보물”(578쪽)이라고 말한다. 장켈레비치는, 모든 것은 일상의 빛 아래 환히 드러나 밝혀지기를 기다리고 있으며,(697쪽) 평범한 나날의 존재에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의 낯섦을 우리에게 전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 앞에 놓인 ‘희망’이라고 말한다. 희망은 그렇게 적극적인 행동가의 낙천성으로 차 있다.
장켈레비치는, 인간이 삶의 끊임없는 긴장과 갈등 속에서 스스로를 개방하고 미덕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본 행동의 철학자였으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사랑이라고 보았다. 이 책은, “존재했다, 살았다, 사랑했다”는 단 한 번의 신비가 삶에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지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그 신비는 바로, “우리의 나날의 신비이며, 따듯하고 낯익은 사물들의 신비”이자, ‘처음이자 마지막인’ 단 하나의 ‘죽음’이라는 신비이다. “무엇보다 이 책을 넘치게 채우고 있는 것은 생의 찬란함이다.”(6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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