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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스 하이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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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상품명 케인스 하이에크
정가 ₩25,000
판매가 ₩2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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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부키
ISBN 9788960513761
출간일 2014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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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지난 100년의 경제학은 이 두 천재의 대결이다
케임브리지에서 하버드까지, 다우닝 가 10번지에서 백악관까지
경제학의 오늘을 만들고 세계 정치 지형을 바꾼 세기의 대결.

오늘날까지 세계 경제와 정치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경제학계 숙명의 라이벌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100년에 가까운 대격돌을 담았다. 논쟁의 세부적인 정황들과 전개 과정, 개인사와 같은 구체적인 부분부터, 둘의 대결이 경제 사조를 형성하고 시대의 사상과 정치관으로 확산되는 큰 흐름까지, ‘케인스 vs 하이에크의 미시사와 거시사’를 한데 아우른 책이다.

저널리스트 출신의 저자는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원전들을 충실히 분석해 두 사람의 대결을 훌륭하게 재구성한다. 균형 있는 관찰자의 시각을 시종일관 유지하면서도, 논쟁을 둘러싼 시대적 배경과 알려지지 않은 일화들, 인물 심리에 대한 치밀한 분석까지 곁들여 케인스와 하이에크를 생생하게 재현해 낸다. 이 책은 출간 직후 화제를 뿌리며 미국 아마존 경제 부문 베스트셀러 2위까지 올랐다.

목차

이 책에 쏟아진 찬사 | 서문

1 매력 넘치는 영웅 : 케인스는 어떻게 하이에크의 우상이 되었나 (1919~1927)
무명 경제학자, 세계적 학자에게 편지를 띄우다 | 압도적인 풍모, 황홀한 음색의 소유자 | 전시의 특수한 경제 상황에 흥미를 느끼다 | 평화 회의는 어디로 귀결되는가 | 패전국의 영웅이 되다

2 제국은 사라지고 : 모든 것이 무너진 폐허 속에서 물가만이 상승하다 (1919~1924)
전선에서 접한 경제학 | 사라진 것은 제국만이 아니었다 | 오스트리아학파의 새내기 | 케인스의 경고가 맞아 들어가다 | 길 잃은 자유방임 | 가난한 ‘미국 나들이’

3 싸움의 전선이 형성되다 : 경제학에서 말하는 ‘자연적’ 질서란 없다 (1923~1929)
낭비하더라도 쓰는 게 낫다 | 자유방임의 종언을 선언하다 | 금 본위제로 복귀하기로 한 영국 | 인위적인 개입이 문제다 | 토끼와 거북이, 경주가 시작되다

4 케인스의 고군분투 :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첫 대면 (1928~1930)
로빈스, 하이에크를 점찍다 | 정신없이 보낸 7년의 산물, ‘미완성작’ 『화폐론』 | 저축과 투자는 다르다 | 공공사업을 두고 재무부와 대립하다 | 새로운 열변의 장, 맥밀런위원회 | 영국이 수입 관세를 부과해야 하는 이유 | 케인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고 싶었던 두 사람

5 총잡이 하이에크 : 케인스의 대항마가 등장하다 (1931)
케임브리지의 열렬한 추종자들 | 싸늘하게 식어 버린 첫 강연 | 통화량은 경제의 작동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 인위적인 저축과 개입은 악영향만 끼친다 | 로빈스의 기대에 십분 부응한 하이에크

6 선제공격 : 하이에크, 『화폐론』을 거세게 혹평하다 (1931)
케인스의 고견을 구하려는 미국인들 | 결국 금 본위제에 발목 잡히다 | 도마에 오른 『화페론』… 난도질이 시작되다 | 안토니우스의 가면을 쓴 키케로 | 케인스는 과연 미끼를 물 것인가

7 반격 : 케인스와 하이에크, 험악한 충돌 (1931)
분노한 케인스, 무자비하게 반박하다 | 상처 입은 하이에크의 재반론 | 논쟁의 2라운드, 서신 왕래 | 런던 vs 케임브리지로 번진 대결

8 스라파의 출격 : 케인스, 용병을 기용하다 (1932)
로빈스와 하이에크의 전략적 실수 | 싸움꾼 스라파 | 이탈리아 용병, 하이에크에게 쓴맛을 보여 주다 | 약 오른 하이에크 vs 독 오른 스라파 | 뭔가 거대한 것의 충돌

9 고지를 향하여 : 세기의 저술을 위한 대장정 (1932~1933)
『일반 이론』 저술에 착수하다 | 『일반 이론』의 핵심 참모진 | 승수라는 새로운 착상 | 『일반 이론』의 전초전, 『번영으로 가는 길』 | 새로운 금 본위제와 새로운 세계 금융 질서를 제안하다

10 천재가 쓴 책 : 고전파 경제학, 집중 포화를 맞다 (1932~1936)
지금은 개입이 아니라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 | ‘영국인’ 하이에크 | 마침내 빛을 본 『일반 이론』 | 왜 지금 전통적 경제학이 문제가 되는가 | 개인과 자유 시장에 위협이 된다는 우려에 대하여 | 눈만 껌뻑이는 하이에크

11 케인스, 미국을 접수하다 : 루스벨트와 젊은 뉴딜 경제학자들(1936)
백기사인 줄 알았으나 돈키호테였던 윌슨 | 루스벨트에게 보낸 ‘구애’ 편지 | 케인스주의, 뉴딜의 심장부에서 길을 찾다 | 케인스 혁명의 물결로 미국이 출렁이다 | 개개인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이룩한 혁명

12 하이에크의 불발탄 : 『순수 자본 이론』의 출간 (1936~1941)
로빈스 감독이 선택한 대타자, 피구 | 반세기 만에 풀린 미스터리 | 사상의 새로운 물꼬가 트이다 | 하이에크를 떠나 케인스에게로 | 『일반 이론』의 대항마가 되지 못한 『순수 자본 이론』

13 어디로 가는 길인가 : 자유인가 폭정인가 (1937~1946)
전쟁과 평화 | 자유 시장에 바치는 찬가, 『노예의 길』 | 어느 지점에서 선을 그어야 하나? | 극과 극의 뜨거운 반응 | 성인이 된 케인스

14 광야를 헤매는 세월 : 영국, 미국, 독일, 오스트리아 (1944~1969)
혐오의 시선과 따돌림의 세월들 | 자유주의 경제학자들, 몽펠르랭에서 뭉치다 | 사랑지상주의자 하이에크 | 나는 자유주의자다 | 기대 밖의 혹평 | 낙향의 길

15 케인스의 시대 : 미국, 30년 대세의 번영을 달리다 (1946~1980)
미국 정부의 공식적 도구가 된 거시경제학 | 케인스주의 바람을 타고 풍요가 확산되다 | 신중한 케인스주의 대통령, 케네디 | 미국 경제, 케인스주의에 중독되다 | 제동이 걸린 경제 성장 | 케인스주의의 아성을 무너뜨린 스태그플레이션

16 하이에크의 반혁명 : 영국과 미국에서 일어난 대반전 (1963~1988)
든든한 지원군 프리드먼의 등장 | 레이건, 보수파의 총아로 떠오르다 | 노벨상이라는 날개로 다시 비상하는 하이에크 | “하이에크교”의 열렬한 신도, 대처 | 레이거노믹스의 두 얼굴

17 싸움은 다시 시작되고 : 민물 경제학자와 짠물 경제학자(1989~2008)
탈케인스주의 시대의 도래 | 클린턴의 제3의 길 | 위기에 봉착한 하이에크적 처방 | 케인스, 화려하게 컴백하다 | 오바마의 경기 부양책은 여전히 논쟁 중

18 승자는 누구인가 : 다시 찾아온 세계 불황 (2008~)
자유주의적 유토피아를 꿈꾼 하이에크 | 자본주의의 진정한 수호자, 케인스

감사의 글 | 주 | 인명사전 | 참고 문헌 | 인명 찾아보기 | 용어 찾아보기 | 사진 출처

저자소개

니컬러스 웝숏 , 김홍식

출판사리뷰

우린 여전히 케인스·하이에크의 시대를 살고 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와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 19세기 말에 태어나 20세기 중반과 후반에 각각 세상을 떠난 두 경제학자. 운명적인 라이벌이었던 두 사람은 1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경제학의 양대 산맥으로 군림해 왔고, 그들의 독자적인 사상이 경제학계는 물론 정치권으로까지 번져 각국의 경제 정책을 좌우했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벌어진 이 두 죽은 천재 학자들의 리턴 매치는 오늘의 세계가 여전히 그들의 자장 안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 줬다.
금융 위기가 닥치자 부시 미국 대통령은 시장이 경기 침체를 소화할 때까지 지켜볼 것인지, 더 악화되지 않도록 수조 달러의 정부 차입금을 지출할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하이에크냐 케인스냐의 갈림길에서 부시는 결국 케인스를 택했다. 2008년 10월 23일자 미 시사 주간지 《타임》은 “돌아온 케인스”라는 기사를 내보내며 케인스의 화려한 재기를 선언했다.
부시에 뒤이은 오바마 새 행정부도 막대한 예산을 경제에 주입했다. 하지만 국가 채무를 전대미문의 수준으로 불리는 일이라는 ‘티파티 운동’ 측의 격렬한 반발에 부딪혔다. 정치 평론가 글렌 벡은 자신이 진행하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그동안 잊혔던 하이에크의 책 『노예의 길』에 관심을 가지라고 촉구했고, 이 덕분에 『노예의 길』은 세계 최대 온라인 서점인 아마존의 2010년 6월 9일자 베스트셀러 집계에서 1위를, 세계 최대 오프라인 서점 체인 반스앤드노블의 주간 베스트셀러에서 1위를 차지했다. 출간된 지 66년 만에, 저자가 사망한 지 20년 가까이 되는 책이 온·오프라인 최대 서점을 석권한 것이다.
왜 아직도 케인스 또는 하이에크인가? 이 책 『케인스 하이에크』는 이 경제학의 두 맞수가 벌인 세기의 대결을 조명함으로써 그 해답을 찾고자 하는 시도다.

지난 100년의 경제학은 이 두 천재의 대결이다

케인스와 하이에크는 1930년대 대공황의 시대에 불황의 해법을 놓고 치열한 지상 논쟁을 벌였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이 두 사람의 대결에 초점을 맞춰 일목요연하게 살핀 책은 그동안 없었다. 100년에 가까운 대결을 연대순으로 담은 이 책은 논쟁을 단순히 중계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상황과 개인적 배경부터 논쟁이 촉발되고 격화하며 전개된 과정, 후예들과 학계로 번지고 각자의 진영이 형성되어, 급기야 각국 정부의 경제 정책의 토대로 발전하기까지의 단계들을 차근히 되짚는다. 케인스의 시대, 하이에크의 시대를 각각 맞이하며 엎치락뒤치락하다 2008년 금융 위기와 더불어 다시 두 사람의 논쟁이 재조명되는 최근의 흐름까지 살펴보고 있다. 논쟁의 세부적인 정황과 개인사 같은 구체적인 부분부터 두 거장의 충돌이 경제 사조를 형성하고 시대의 사상과 이념, 정치관으로 확산되는 큰 흐름까지, 한마디로 ‘케인스 vs 하이에크의 미시사와 거시사’를 한데 아우른 책이다.
저자 니컬러스 웝숏은 《타임스》 창간 편집인, 《뉴욕 선》 수석 편집자를 지낸 노련한 언론인으로,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광대한 문헌을 명료하게 정리해 냈다.(케인스가 남긴 저작은 편집을 거쳐 출판된 문헌만 20권이 넘는 수준이다.) 로이 해러드, 로버트 스키델스키, 앨런 에번스타인 등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전기에서 따로따로 단편적으로 서술된 부분도 치밀하게 연결해 새롭게 재구성했다. 마치 두 거장의 전기를 두 사람의 충돌과 대립에 초점을 맞춰 교차 서술한 듯한 구성이다. 특히 주요 주장과 논박은 두 인물의 실제 발언을 그대로 가져와 보여 줌으로써 독자는 논쟁의 한가운데에서 양쪽 의견을 직접 듣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영미권 독자들조차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대결을 이처럼 본격적으로 조명한 책에 목말라 있었는지, 이 책은 출간 직후 화제를 뿌리며 미국 아마존 경제 부문 베스트셀러 2위까지 올랐다.

두 라이벌의 전기를 동시에 읽는 색다른 경험

저자 웝숏은 레이건, 대처 등의 전기를 쓴 작가답게 등장인물의 심리나 개인적 처지를 치밀하게 분석함으로써 케인스와 하이에크를 생생하게 재현해 낸다. 역사 및 경제 이론 대결과 더불어 주요 등장인물의 흥미진진한 일화들과 잘 알려지지 않았던 뒷얘기들이 한가득 담겨 있어,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전기이자 20세기 역사서로 읽어도 손색없다. 예컨대 이 책은 두 학자의 대립이 어떻게 시작했는지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어떤 경제학 책에서도 찾을 수 없는 역사의 이면이다.
케인스는 앨프리드 마셜의 가르침을 토대로 한 케임브리지 대학 중심의 영국 경제학파에 뿌리를 두고 있었고, 하이에크는 루트비히 폰 미제스가 설파하는 자본 투자 이론 중심의 유럽 대륙 경제학파가 뿌리였다. LSE(런던 정경대학) 측은 케임브리지를 누르고 영국 경제 이론의 산실로 발돋움하고자 했다. 케인스를 “경제학계의 돌팔이”로 여겼던 LSE 학장 윌리엄 베버리지와 LSE 정치경제학부 교수였던 라이어널 로빈스가 합심해 케인스의 코를 납작하게 할 만한 소장 경제학자를 물색했고 이때 오스트리아학파의 새내기 하이에크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로빈스가 주관한 몇 차례의 강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하이에크는 LSE 교수로 임용됐다. 그리고 1931년 여름 로빈스가 편집 주간으로 있었던 학술지 《이코노미카》에 케인스의 『화폐론』을 비판하는 서평을 기고함으로써 운명적인 논쟁이 시작됐다.
케인스와 하이에크는 사랑에 있어서도 그들의 경제학 이론만큼이나 통이 크거나(케인스) 자유주의적(하이에크)이었다. 인생의 절반을 동성애자로 살았던 케인스는 러시아 발레리나 리디야 로푸호바와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두 사람이 날마다 서로에게 쓴 장문의 편지 뭉치가 수북하게 남아 있는데, 서로의 사랑이 얼마나 정열적이었는지 노골적인 성애 묘사까지 그대로 담겨 있다. 둘 다 아이를 간절히 원했지만 리디야가 불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케인스는 불임을 자기 탓으로 돌렸다. 나중에 귀족 작위를 수여받았을 때 케인스는 자신을 가리켜 본래 작위명인 ‘Baron Keynes(케인스 남작)’ 대신에 발음이 같은 다른 말 ‘Barren Keynes(불임의 케인스)’라고 부르곤 했다. 한편, 하이에크는 옛사랑을 찾아 조강지처를 버린 케이스였다. 하이에크는 1946년 빈을 방문했다가 젊은 시절의 연인을 만나게 됐다. 이혼을 원했지만 아내가 동의하지 않자 LSE의 교수직을 내놓고 이혼 소송 비용이 저렴한 미국 아칸소 주로 거주지를 옮겼다. 전 아내와 두 자녀, 새 아내까지 부양하게 된 하이에크는 결국 미국 시카고 대학,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대학을 전전해야 했다. 심신 쇠약으로 항우울제까지 복용하던 하이에크는 1974년 노벨상을 수상한 이후에야 삶의 활력을 되찾았다.

핵심 쟁점은 무엇이었나?

케인스와 하이에크가 가장 큰 견해 차이를 보인 부분은 경기 순환의 작동 방식, 즉 불황이 나타나는 원인과 그 해법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처 방법의 차이는 ‘국가냐, 시장이냐’라는 경제학 최대의 대결로 수렴된다. 두 거장들의 사고를 따라가 보자.

① 왜 불황이 나타나는가?
케인스는 저축되는 돈이 투자되는 돈보다 많아지면 불황 국면이 출현하고 그에 동반해 물가가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경기가 바닥을 치면 만성적인 수요 부족으로 경제 활동이 둔화돼 불필요한 실업이 발생한다고 봤다. 대공황도 저축이 투자보다 많아서 찾아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케인스에 따르면, 물가 상승은 저축을 늘림으로써 억제할 수 있고 불황은 투자를 늘리고 총수요를 증가시킴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케인스는 이렇게 충분한 수요를 발생시킬 사적 기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정부가 공공사업을 통해 자체적으로 수요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봤다. 이를 위해 정부는 통화 정책(금리 인하 및 통화 공급량의 증대), 세금 감면, 공공사업을 수행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반대로 하이에크는 불황이란 생산자가 은행 융자로 돈을 빌려 자본재를 더 많이 생산하는 경우 등으로 통화량이 늘어남으로써 신용이 과잉 팽창한 결과라고 봤다. 즉 대공황도 투자가 저축보다 많아서 발생했다. 가만두면 가격 메커니즘에 따라 상품의 공급과 수요가 일치하는 균형을 향해 시장이 움직일 텐데,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위적으로 낮추거나 높임으로써 저축과 투자의 관계에 개입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봤다. 결국 국가가 통화 시스템에 개입하지 않는다면 경기 순환도 없어질 것이고 불황도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② 케인스, “정부가 돈을 빌려서라도 공공사업에 나서야 한다”
“사람과 공장이 놀고 있는 마당에 새로운 개발 사업에 필요한 자원이 없다고 하는 건 아주 웃긴 얘기다.”
케인스는 경제의 전반적 수요를 높이기 위해 정부가 돈을 써서 도로 건설을 비롯한 공공 토목 공사를 벌여 노동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동원한 것이 ‘승수’ 이론이었다. 정부 사업은 고용 증가와 새로운 지출을 낳아 임금과 여타 소득을 발생시키고 이로부터 새로운 구매가 유발돼 이 구매가 다시 고용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고용이 늘어나면 정부가 실업 급여로 써야 할 돈이 절감되고 일정한 과세 수준에서 걷히는 세금도 늘어나므로 정부는 지출한 돈의 절반을 다시 돌려받는다.” 이 승수 개념은 케인스의 기념비적 저술 『고용, 이자, 화폐에 관한 일반 이론』(1936)의 핵심 요소였다.
재정 적자 악화를 이유로 정부 차입을 통한 경기 부양책에 반대하는 이들을 향해 케인스는 경기 침체 국면에서는 대규모 재정 적자를 견디며 사는 것이 적자를 서둘러 메우려고 지출을 삭감하는 것보다 낫다고 주장했다. “고용 증대와 국민소득 증가는 서로 똑같은 것이고, 국민소득의 증가 없이 재정 균형을 달성할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또 세금을 인하하면 납세자의 구매력도 늘어나 연쇄적인 지출로 이어지는 승수 효과를 발휘한다고 했다. 경기 부양을 위해 세금 인하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금 인하가 공무원 연봉 삭감 등과 같은 정부 지출 감소로 상쇄되면 고용 증진 효과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③ 하이에크, “인위적인 개입 없어야… 자유시장이 해결할 일”
하이에크는 실업을 치유하기 위해 정부 차입을 통한 대규모 공공사업을 벌이자는 케인스의 방식은 물가 상승을 부채질할 뿐이라고 했다. 자유시장은 장기적으로 모든 사람이 고용되는 균형 상태로 경제를 되돌려 놓을 것이기에 인위적 부양책을 쓸 게 아니라 영구적 해결책이 스스로 자리 잡도록 시간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표적 저술인 『노예의 길』(1944)에서 하이에크는 자유시장을 버리고 계획경제를 주창하는 사람들은 그 의도가 아무리 좋다 한들 결국 폭정을 초래하기 쉬운 길로 들어선다고 했다. 경제를 통제하기 시작하면 모든 문제에 간섭할 때까지 그 통제력이 확장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이에크는 극좌와 극우를 모두 비판했다. 시장의 작동을 폐기하고 포괄적인 국가 계획을 동원함으로써 개인의 자유를 공격한다는 관점에서는 두 가지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④ 거시경제 vs 미시경제, 영원히 화해할 수 없었던 두 세계관
케인스는 경제는 전체상을 파악할 때 가장 효과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공급과 수요, 금리 같은 경제의 총량적 변수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식으로 바라보고자 했다. 반면에 하이에크는 경제의 전체상은 쉽게 파악할 수 없으며 오직 시장에서 행동하는 개인의 상호 작용을 고려해야만 이해할 수 있고, 그것도 일부만을 이해할 수 있을 뿐이라고 확신했기에, 비용과 가치 등 경제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에 주목하는 관점을 고집했다. 케인스의 사고방식은 오늘날 ‘거시경제적 사고’로, 하이에크의 사고방식은 ‘미시경제적’ 사고로 불린다. 당시에는 미시경제적인 분석 도구밖에 없었고 케인스의 획기적인 사고를 하이에크는 이해할 수 없었기에 두 사람의 간극은 해소될 수 없었다.

역사는 누구의 손을 들어 주었나?

① 미국의 부흥을 이끈 케인스의 시대
대공황은 역설적으로 케인스의 생각이 퍼져 나가는 비옥한 토양이 됐다. 루스벨트 미 대통령이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펼친 뉴딜 정책은 케인스 식 경기 부양의 대명사가 됐다. 때마침 미국 경제학계의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케인스주의가 미국 젊은 경제학자들에게 각광을 받았다. 하버드 대학은 케인스 혁명의 중심지였고 폴 새뮤얼슨,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등 케인스에 열광하는 경제학자들이 빠르게 늘어났다. 특히 새뮤얼슨이 저술한 교과서 『경제학』은 전 세계로 번역되어 케인스주의 복음을 전파했다.
케인스는 1946년 세상을 떠났지만 1960년대 후반까지 자신의 치세를 누렸다. 1940년대 중반부터 영국의 「베버리지 보고서」, 미국의 완전 고용 법안, 호주의 완전 고용 백서 등 영미권에서 완전 고용을 정부의 중요한 책임으로 돌리는 구체적인 움직임이 일었다.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 등 미국 대통령들은 공화당 출신, 민주당 출신 할 것 없이 적자 지출을 과감히 수용하며 공공사업을 벌이고 국방과 우주 개발에 대규모 지출을 감행했다. 1950~1960년대 미국에서는 풍요가 전역으로 번져 나가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그런데 1970년대 들어 불황을 맞아 실업이 늘어나는데도 물가가 계속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찾아옴으로써 30년간 대세를 이뤘던 케인스 혁명은 막을 내렸다.

② 신자유주의가 위세를 떨친 하이에크의 시대
하이에크는 197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2년 뒤 하이에크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던 통화주의학자 밀턴 프리드먼까지 노벨상을 타면서 바야흐로 하이에크의 시대가 찾아왔다.
1974년 영국에서는 대처가 보수당 당권을 잡았다. 대처는 하이에크를 대놓고 치켜세웠던 인물로, 1979년 총리로 선출되자 국가가 소유하고 있던 전기, 전화, 가스, 수도, 철도 등을 하나하나 민간에 매각했고 통화량도 줄이는 등 하이에크에 약간의 프리드먼을 가미한 행보를 보였다.
카터의 재선을 막고 미국 대통령이 된 레이건은 물가를 잡기 위해 통화를 긴축했다. 감세 정책도 시행했으며 산업 규제를 줄이고 법인세를 낮춰 생산 활동을 고무하는 ‘공급 측면 경제학’ 정책을 펼쳤다. 물가 상승률과 실업률이 떨어지고 실질 GDP 성장률도 상승하면서 1982~1990년 미국 경제는 호황을 맞았다.
1990년대가 지날수록 통화주의의 위세가 약해지고 케인스적 사고와 하이에크적 사고를 절충하는 탈케인스주의적인 국면이 찾아왔다. 그럼에도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논쟁 구도에 따라 갈라지던 경제학자들의 분단은 여전해, 공급 측면의 해결책을 우선하는 ‘민물 경제학자’들과 수요 견인형 해결책을 중시하는 ‘짠물 경제학자’들이 대립하는 가운데 하이에크적 사고가 강했던 전자가 우세한 시기였다.

③ 케인스의 화려한 컴백과 다시 불붙은 논쟁
그러나 하이에크의 ‘작은 정부’와 자유시장 관념은 세계적인 금융 위기가 발생하면서 치명타를 맞았다. 부시는 케인스주의적 경기 부양 조치로 1680억 달러의 소득세 환급을 요청했고, 미 재무부는 은행이 보유한 부실 채권 7000억 달러를 구매해 줬다. 영국도 은행 주식을 구입하는 형태로 은행에 구제 자금을 지급했다. 1930년대 대공황기에 케인스가 수립한 해결책이었다. 케인스의 화려한 부활이었다.
2009년 오바마 미 대통령이 세금 감면과 실업 급여, 사회 간접 자본에 총 7870억 달러의 예산을 지출하는 법안을 승인해 줄 것을 의회에 촉구하자 오래전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논쟁이 다시 벌어졌다. 오바마의 경기 부양책이 2년이 지나도 별다른 효력이 없자 이번에는 정부 차입의 중단과 국가 채무의 신속한 상환을 촉구하는 티파티 운동이 일어났다. 하이에크가 다시 고개를 든 셈이었다.

자본주의의 미래를 가늠해 볼 기회

이 책은 경제학자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대결을 흥미롭게 다룬 풍부한 텍스트로서도 훌륭하지만 독자적인 두 사상가가 경제학을 넘어 정치적 결정과 우선순위에 영향을 끼침으로써 현대 정치 지형의 양상을 어떻게 바꿔 왔는지를 되짚어 볼 수 있는 역사서로서도 준수하다. 20세기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이항 대립으로만 보지 않고 자본주의의 변모 양상에 초점을 맞춰 살펴보는 기회도 제공한다.
무엇보다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대결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경기 부양을 위해 정부는 어떤 정책을 펴야 하는가? 정부가 포괄해야 하는 사회 안전망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위기에 처한 금융 기관이나 사적 기업을 정부는 구제해야 하는가, 내버려 둬야 하는가? 전기, 수도, 가스, 철도 등 공공 서비스도 시장에 맡겨야 할 것인가? IT 산업 시대에도 대규모 공공사업이 일으키는 고용 효과, 승수 효과가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대결이 현재 진행형임을 보여 준다. 어쩌면 자본주의 사회의 영원한 테마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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